해마다 연말이면 두 딸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현금을 받는다. 적지 않은 금액이라 받을 때마다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지만, 고맙게 여기고 알뜰하게 쓴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는 외손녀와 외손자들에게 선물로 물건을 보내는 대신 아이들 머릿수에 따라 일정한 금액의 현금을 보낸다. 그게 서로 편하다는 딸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각자의 성격대로 큰딸은 크리스마스 아침에 정확하게 송금하고 나면 바로 이메일로 연락이 오고, 작은딸은 편한 대로 크리스마스 며칠 전후해서 송금한다. 어쩌다 크리스마스 지나서도 선물 보냈다는 연락이 없으면 괜히 서운하다.
우리 부부는 성탄 미사에 참례할 때는 특별히 성탄 감사 헌금을 준비한다. 몇 년째 그리 많지 않은 금액을 변동 없이 준비해 왔는데, 이번에는 금액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치 않은 지출이 생겼고, 또 구차한 핑곗거리가 두어 가지 있고, 억지로 핑계를 더 하자면 작은딸에게서 아직 연락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일찍 수표를 꺼내놓고 하느님께 몇 가지 이유를 대었다.
“주님, 이번에는 금액을 조금 줄일 테니 눈감아 주세요.”
“쪼잔하기는, 그 돈 줄인다고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생기느냐?”
그런 문제는 없다. 그냥 갑자기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눈 딱 감고 금액을 조금 줄인 헌금을 준비하려는데, 작은딸이 아직 선물을 보내지 않아서 서운했던 게 생각났다. 아무리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이라도 돈 몇 푼에 쪼잔하게 구는 나를 보시고 한심스러워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액이 줄어든 수표를 보시면 서운해하실지도 모른다.
책상 앞에 앉아서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마님이 마실 걸 가져다주길래 성탄 감사헌금의 액수 얘기를 꺼냈더니, “그냥 하던 대로 하시유”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갈등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리하여 늘 내던만큼 헌금을 준비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했다. 꼴랑 이것도 헌금이라고 고민했다니…퍼뜩 일어나서 커피나 끓여야 하겠다.
오후에 작은딸에게서 화상 통화가 왔기에 받아서 성탄 축하 인사를 한 다음 외손자하고도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작은딸이 너무 바빠서 성탄 선물을 아직 못 보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마님이 한 말씀했다.
“괜찮다. 좀 늦게 보내면 어떠냐. 그저 많이만 보내다오”
전화를 끊고 바로 작은딸에게서 송금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하느님, 내년 부활축일과 성탄축일에도 늘 내던 대로 내겠습니다.왜 액수를 올릴 생각은 하지 않느냐고요? 에이, 제 수입부터 올려 주셔야지요.
(2024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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