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는 웹사이트에 한 여성이 애완견의 죽음을 알리며 울분을 토하는 글을 올렸다. “제가 기르던 개가 차에 치여 죽었어요. 너무 슬퍼요. 어떤 인간이 죽였는지 모르지만, 그런 인간은 천벌을 받기 바랍니다.”
그런데 개든 고양이든 일부러 차로 동물을 치어 죽이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그런 잔인무도한 인간이 있다면 하늘의 벌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동물을 피하지 못했거나, 어두운 밤에 미처 보지 못하고 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여성의 글을 읽으니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이제 2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다. 주일에 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속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 길가에 같은 성당에 다니던 J씨 가족이 차를 세워놓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자동차가 고장났나 싶어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나도 그들의 차 조금 앞에 차를 세우고 다가갔다.
J씨의 말로는 운전 중 갑자기 개가 도로로 뛰어들어 미처 피하지 못하고 치었다며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는 흑인 여러 명이 모여 무언가 떠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과 분위기에서 묘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개를 두고 떠나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류가 느껴져 나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의 첫 질문은 개가 “죽었냐, 살았냐?”였다. 죽었다고 하자, 경찰은 “다른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사체를 길가에 두고 떠나라”고 했다. 가해자의 인적사항을 묻지도, 사고 경위를 따지지도 않았다. 아마도 흑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의 경찰이었기에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 아닐까 싶었다. 유기견이니 주인이 문제 삼을 일도 없었고, 현장에 직접 나오는 것도 귀찮았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충 그렇게 넘어가려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흑인들에게 경찰의 지시 내용을 전하며 “혹시 미심쩍으면 경찰에 직접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J씨가 개의 사체를 길가로 끌어 내는 모습을 보고 나는 현장을 떠났다. 그 뒤 경찰이 현장에 와서 적절한 조치를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 글을 쓰다 다시 그 여성이 올린 글을 확인해 보니,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댓글이 61개나 달려 있었다. 원글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댓글은 그녀를 위로하는 내용이었지만, 개를 목줄로 묶어두거나 문단속을 잘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은근히 그녀의 책임을 지적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나로서는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돌보고 사랑해 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참 별일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이런 사고를 당해도 저렇게 유난을 떨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 생각을 애견인이나 애묘인들이 본다면 아마 좋은 말은 못들을 테지만, 미국인들의 애완동물 사랑이 유난스럽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개가 치이기 하루 전날 네일 살롱에서 일하는 여성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는 글에는 댓글이 고작 6개만 달렸다는 사실이 이런 생각에 더 무게를 실어 준다.
운전 중 개나 고양이를 치는 사고가 발생하면 뉴저지주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1) 사고가 발생하면 차량을 즉시 안전한 곳에 세우고 동물의 상태를 확인한다.
(2) 목줄이나 인식표가 있는지 확인하여 반려 동물인지 유기 동물인지 확인한다.
(3) 반려 동물이면 주인에게 연락하고 유기 동물이면 지역 동물보호센터나 경찰에 신고한다.
(4) 반려 동물을 친 경우 주인에게 손해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유기 동물을 친 경우 배상 의무는 없으나 방치하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5) 차량이 손상되었다면 자동차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지 확인한다.
(2025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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