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꿈에서 만난 친구, 그리움으로 남다

삼척감자 2025. 6. 16. 05:23

 

어제 새벽, 중학교 동창생인 Y를 꿈에서 보았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세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중학교 시절, 그는 잘생긴 학생이었다. 나도 그랬다.
그는 공부도 잘했다. 나도 그랬다.
사실은 내가 조금 더 잘했지만, 시골 중학교에서의 성적 차이라 해 봐야 거기서 거기였다.
당연히 우리는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따라갈 수 없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는 책을 낭독할 때 마치 라디오 드라마의 성우처럼 멋진 목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명문 K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언론계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잠에서 깨어 지난 일을 되짚어 보았다.

몇 년 전, 아마도 10여 년쯤 되었을까. 친구를 통해 그와 연락이 닿았지만,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반년 정도 수감되었던 후유증 때문인지, 그의 기억은 안개처럼 흐릿해져 있었다. 그래서 친하게 지냈던 나에 대한 기억도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가톨릭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반감과 보수 세력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자주 드러냈고, 그런 이유로 우리의 대화는 매끄럽지 못했다. 결국 소셜미디어를 통한 연락도 오래가지 못하고 끊어지고 말았다.

 

이십 대 중반, 중학교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를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벌써 50년 전의 일이다. 그날 그는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찬송가를 불렀는데, 그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하지만 그는 그 결혼식에 대해서도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우리가 중학교를 졸업한 해는 1964년이었으니 벌써 60년 전의 일이다. 졸업 후 대학 시절에 친구들과 무교동에서 두어 번 술자리를 가진 적은 있었지만, 그는 그런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학생운동에 빠졌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생계 유지에 바빴던 나에게는 그런 그가 멀게만 느껴졌다. 일부러 연락을 하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중학교 졸업 이후 지금까지 60여 년이 흘렀고, 그를 다시 본 것은 친구 결혼식 때의 짧은 만남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그 기억조차 하지 못하니, 나는 그의 기억 속에서 아주 오래전에 사라진 존재가 된 셈이다.

 

몇 달 전부터 고등학교 동창들의 부고를 계속 접하고 있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는 나이 탓이라지만, 평소 건강하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꿈에서 친했던 친구를 만나니 반가움보다는별일 없겠지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사진도 함께 올리는 것은, 혹시라도 그의 소식을 알게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더라도 친구들은 알아볼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친구를 꿈에서 보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그 친구가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니라 내 과거의 모습이나 감정 상태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자유로움, 친밀감, 열정 같은 긍정적인 요소를 지금의 삶에서 되찾고 싶어하는 무의식의 표현일 수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따뜻했던 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을 꿈속에 다시 등장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싸한 해몽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런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 친구의 소식을 듣고 싶을 뿐이다. 비록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혹시 이 글을 보고 연락을 주기라도 한다면, 나는 무척 반가울 것이다.

 

 (2025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