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온통 ‘바람’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TV를 켜도, 스마트폰을 열어도 누군가의 은밀한 사생활이 자극적인 활자와 영상으로 쏟아진다. 그 속의 인물들은 성별도, 나이도, 만남의 방식도 제각각이다. 반복되는 소음 속에 있다 보면, 인간이란 이토록 쉽게 마음을 주고 또 쉽게 등을 돌리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세상이 갑자기 타락한 것은 아니다. 통계자료는 말한다. 과거보다 불륜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도, 우리나라가 유독 도덕적으로 해이한 것도 아니라고. 달라진 것은 ‘드러나는 방식’이다. 예전 같으면 담장 안쪽에 묻혔을 일들이 빛의 속도로 공유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실제보다 더 많은 바람을 목격하고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무와 남편은 바람이 들면 못 쓴다”고. 속이 텅 비어버린 무처럼 사람의 마음도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 하나에 전체가 허물어지곤 한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오로지 나약한 의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원초적인 본능, 외로움, 인정받고 싶은 갈망…. 그 위태로운 감정에 자극적인 시대의 공기가 덧씌워지면 마음은 어느새 제자리를 잃고 흐르기 시작한다.
붙잡히지 않고 머물지 않는 것, 그것이 마음의 속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두고 ‘바람을 피운다’고 말한다. 실체 없는 바람이 일렁이다가 끝내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지는 찰나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또 있을까.
이러한 인간의 욕망과 흔들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약 700년 전 고려가요 ‘쌍화점’을 다시 떠올려 본다. 만두를 사러 간 남편 있는 여인의 손목을 만두 가게 주인이 잡는 장면이 반복되는 이 노래는, 당시의 파격적인 성 풍속과 인간의 원초적 긴장감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외국 상인부터 장사꾼, 심지어 금욕의 상징인 스님까지 등장해 욕망의 굴레에 뛰어드는 모습은, 인간이 결코 규범과 도덕만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임을 넌지시 풍자한다. 한편으로는 그 시대에 이토록 자유분방한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결국 ‘쌍화점’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메시지는 단순한 남녀의 정사가 아니다. 겉으로는 점잖은 질서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나 흔들릴 수 있는 뜨거운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는 보편적 인간사의 이중성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바람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 그것은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파동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의 문제다. 마음이 기우는 것까지는 본능의 영역일지 몰라도, 그 흔들림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어올 때, 그 바람을 타고 떠날 것인가, 아니면 옷깃을 여미고 제자리를 지킬 것인가. 그 짧은 선택의 순간에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해낸다.
가수 김범룡은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다. “내 님은 바람이련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오늘도 잠 못 이루고 어둠 속에 잠기네.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돌이켜보면 나는 됨됨이가 변변치 못한 탓인지, 어느덧 나이 여든이 다 되도록 따스하고 포근하다는 봄바람도, 시원하다는 가을바람도 제대로 쐬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이 나이에 새삼 무슨 풍파가 일어날 리도 없으니, 지금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왔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2026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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