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22

영문으로 번역한 책을 만들어 보고

20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 적지 않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런 글은 대개 학교 동문과 예전 직장 동료들 그리고 성당 교우들이 읽었지만, 어릴 적에 미국에 왔거나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독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내 가족은 내가 한국어로 쓴 글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큰딸이 오래전부터 그런 글 중에서 일부라도 영어로 번역하여 외손녀와 외손자들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30대, 좀 늦은 나이에 미국에 오고 오랜 세월 특별히 영어 공부에 힘쓰지 않은 내 영어 실력으로는 어려웠다.그러다가 AI(인공지능)로 번역을 해 보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개씩 골라서 인공지능에 번역을 시키고, 그걸 다시 사전을 찾아가며 내가 교정을 본 다음 영문..

가족 이야기 2024.11.11

혼자 식사하기

아내가 독일 여행을 떠나니 혼자 식사하는 게 참 힘들다.미리 준비해 둔 식재료를 냉동실에서 꺼내서 익히고 끓이기만 하면 되지만,그러한 준비 과정도 참 귀찮아서 밑반찬이야 여러 가지 있지만,식탁에는 언제나 김치 한 가지만 올리곤 한다.그래도 그 시간에 캐나다에 사는 큰딸이 다섯 살 된 막내 외손녀와화상 통화를 하게 해 주어서 적적함을 덜어 준다.대화는 늘 비슷하다.“뭘 먹고 있니?”“치즈와 비스킷과 ….을 먹고 있어요.”“오늘 뭐 하고 지냈니?”“아드리아나와 같이 놀았는데, 참 재미있었어요.”“할머니는 독일 가셨다면서요?”“그래, 곧 돌아오실거야.”달리 할 말이 없으면 서로 밥 먹는 걸 구경하며 이유 없이 웃기도 한다.그렇게라도 혼자 밥먹는 아비의 적적함을 덜어주려는 큰딸의 배려가 고맙다.그런데 작은딸은 ..

가족 이야기 2024.10.16

이 좋은 아침에

아내의 독일 여행 중에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작은 집이지만, 혼자서 보내려니 집이 참 썰렁했고, 한밤중에는 심란했다. 하루 서너 시간 밖에 못 자는 일이 열흘 이상 계속되니 참 견디기 어려웠다. 어저께 아침 산책길에 만난 대만 태생 할머니 추 메이에게 그런 사정을 말했더니 불면에 직방으로 듣는 약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염치불구하고 좀 나누어 달라고 했더니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 집으로 작은 통에 든 약을 가져다주었다. “약통에 붙은 레이블을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습관성 없음. 술 마시고 복용하지 말 것. 2주 이상 복용 삼가. 어린아이와 임산부는 사용 금지” 대강 그런 상투적인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70대 할아버지가 임신했을 리가 없고, 술이야 바로 끊으면 되니까 저녁일곱 시 반에 바로 잠자리에..

가족 이야기 2024.10.11

조명이 어두워서

너덧 살 때부터 지금까지 귀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를 겪으며 살아왔다. 휴전 직후에 중이염으로 고생했지만, 당시에는 위생 관리가 열악했고 의료 시설 이용이 어려웠기에 그냥 방치해 두어서 문제를 키웠던 것 같다. 자라며 오랫동안 이명으로 고생했지만, 특별히 치료를 받은 기억이 없다. 난청으로 평생 어려움을 겪으며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여러 차례 만나 보았지만, 진료를 통해 청력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어릴 적에 치료받아야 했는데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었다.    청력이 시원치 않으니 수업 시간에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고, 대화가 원만하지 않아서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지 않아도 내성적인 성격이 더욱 움추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귀만 정상이었더라면,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원만해서 부..

가족 이야기 2024.09.07

영문 수필집 발행

교통사고 이후에 사고 후유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 치료 전문의인 Dr. Kaplan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후유증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며 글쓰기를 강력히 권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글쓰기로 20년 가까이 쓴 글이 적지 않다. 어느 정도 분량이 모이면 책으로 묶다 보니 그동안 만든 책이 여섯 권이다.그동안 지나온 이야기를 두 딸이 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미국에서 자란 딸들의 한국어 독해력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 사위의 한국어 실력은 우리 딸들보다 떨어지고, 외손녀들과 외손녀들은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무척 힘든 일이고…얼마 전에 큰 외손녀가 문학 컨테스트의 단편 소설 부문에서 1등상을 받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혹시 인공 지능의 도움을 받..

가족 이야기 2024.08.05

작은딸의 출장

작은딸에게서 일주일 예정으로 프랑스 출장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연락을 받고 나서 내가 지금의 딸들보다 더 젊었을 적에 출장 다닌 일이 생각났다.늘 큰 고객에게 호출받아서 부품 공급에 문제가 많다거나, 품질 관리에 더 유의해야 한다는 등의 잔소리나 야단을 맞는 게 출장 가는 까닭이었으니 떠나기 전에도 마음이 무거웠고, 돌아오면서도 유쾌하지 않았다. 서비스 부서의 책임자는 늘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담당지역이 미국이었으니 주로 미국 내의 큰 거래처를 방문했지만, 가끔은 한국 내 생산 부서로 출장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내가 갑의 입장이 되기는 했지만, 같은 회사 직원끼리 눈살 찌푸려 봐야 업무의 사안에 따라 갑을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서로 심한 말은 자제하는 게 불문율이었다.작은딸의 이번 ..

가족 이야기 2024.06.11

인공지능에 번역을 맡겨보니

오래전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난 후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적지 않다. 죽음이 생각보다 참 가까이 있고, 언제라도, 내일이라도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내가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싶었고, 두 딸에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국판으로 400쪽 가까운 분량의 글이 모이면 한 권씩 책으로 묶은 게 여섯 번이다. 당초 뜻한 것과는 달리 딸들의 한국어 독해력이 나의 영문 독해력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없으니 그간 보내 준 책들도 서가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 언젠가 큰딸이 내가 쓴 글 중에서 나의 두 딸과 외손녀 그리고 외손자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을 골라서 영문으로 번역해 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글 몇 ..

가족 이야기 2024.03.08

Sunrise, Sunset

지난 4년 간 쓴 잡문을 모아서 미국 출판사를 통해 여섯 번째 책을 만들어 보았다. 일곱 번째 책을 만들 수 있을까? 그건 나도 모르지만, 습관적으로 많은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비슷한 글을 쓸 때도 있고, 이 나이에 새로운 인생 체험도 쉽지 않으니, 이 책이 마지막 책이 될 듯 싶다. 이전에는 100여 권을 찍어서 무상으로 뿌리기도 했지만, 그게 다 부질 없더라. 제작비도 많이 인상되어 대량으로 무상 제공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해서 이번에는 딱 네 권만 찍어서 두 딸에게 한 권 씩, 두 권은 보관용으로 간직하고 본문은 pdf로 보관하려고 한다. 표지는 영문이나 본문은 당연히 한글이다. 우리 마님이 생애 최초로 세상에 네 권 밖에 없는 희귀본의 표지 모델로 등장했으니 잘 찾아 보시길. 모든 공감: 28..

가족 이야기 2023.08.21

우리 엄마,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했어요?

가족 휴가를 보내기로 한 캐나다 토론토 근교의 호숫가 별장에 도착한 날이었다. 전면이 유리라서 호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식탁에 앉아 큰사위가 준비한 차디찬 화이트 와인을 천천히 마시며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서 책을 읽던 열두 살 된 큰 외손녀가 물었다. “엄마가 다닌 대학교가 명문 대학교라면서요?” “그럼. 거기가 네 엄마가 입학 전부터 제일 다니고 싶어하던 대학교였어.” “엄마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걱정할 정도였어.” “첼로 연습하는 건 좋아했어요?” “좀 지겨워할 때도 있었지만, 연습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어. 가끔 공부할 시간이 모자란다고 연습을 빼먹으려고..

가족 이야기 2023.07.20

외손자와 외손녀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큰딸은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었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사는 작은딸은 외동아들을 두었다. 뉴저지주에 사는 우리 부부가 멀리 떨어져 있는 딸들 가족 모두를 한꺼번에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올해 6월에 아내의 만 70세 생일 축하 모임을 큰딸 가족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하며 작은딸 가족도 함께 만나고 헤아려 보니 가족이 모두 모인 건 지난번에 만나고 4년 만이었다. 큰 외손녀가 열두 살, 그 뒤를 이어서 큰 외손자가 아홉 살, 작은 외손자가 여덟 살, 작은 외손녀가 네 살이니 제일 막내와 나는 꼭 70년 차이가 난다. 먼 훗날 그 아이가 내 나이가 되면 이번 모임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큰딸 가족과 우리 부부는 2년 만에, 작은딸 가족과는 1년 만에 ..

가족 이야기 2023.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