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52

악어와 악어새, 그리고 치과의사와 환자

강가에 사는 거대한 악어는 종종 입을 벌린 채 휴식을 취하곤 한다. 그러면 어디선가 작은 악어새가 날아와 악어의 이빨 사이를 부지런히 쪼아댄다. 악어새는 악어의 치아에 낀 찌꺼기를 먹으며 배를 채우고, 악어는 덕분에 치아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 둘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치과의사와 환자도 마찬가지다. 환자는 치아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하고, 치과의사는 환자의 치아를 깨끗이 관리해 준다. 치과의사는 환자의 구강 건강을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고, 환자는 건강한 치아로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악어와 악어새가 자연 속에서 공생하듯, 치과의사와 환자도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살아간다. 정기적인 검진과 치아 클리닝을 통해 환자는 더 오랫동안 건강한 치아를 유지할 수 있고, 치과의사는..

이것저것 2025.03.21

컴맹과 문맹

가끔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문제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받곤 한다. 때로는 직접 댁을 방문해 문제를 해결해 드리기도 한다. 대부분 간단한 문제들이지만, 어르신들은 그러한 작은 문제에도 답답해하며, 내가 손쉽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초보 수준을 갓 벗어난 나를 전문가로까지 추켜세우시니 민망할 때가 많다. ‘컴맹’이라는 단어는 ‘문맹’에서 유래한 조어로,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단순히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지칭했지만,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사용은 가능하더라도 컴퓨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에게 새로운 기술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므로, 이를 거부하..

이것저것 2025.03.20

강호의 숨은 고수

전에 다니던 성당의 음향 설비 수리를 위해 M 씨(익명)가 평일에 성당에 자주 들렀다. 올 때마다 혼자서 텅 빈 성당에서 작업을 마친 후 사무실에 잠깐 얼굴을 비추거나, 아니면 말없이 사라지곤 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늘 무표정한 그는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와 제대로 된 대화란 걸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신자 수에 비해 내부 공간이 커서인지 성당의 음향 설비는 늘 말썽을 부렸다. 부분적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갑자기 이상 고음이 발생하는 등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서였는지 작업하러 올 때마다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언젠가 성당 앞에 차를 세워둔 채 쉬고 있는 그에게 어쩌다 음향 관련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그냥 취미 삼아 하던 일이 생업이 돼버렸다.”고..

이것저것 2025.02.25

‘나의 안토니아’를 읽고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는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인 윌라 캐셔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데,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대평원을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이자,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은 네브래스카로 이주한 체코 출신 소녀 안토니아와 그녀를 바라보는 화자인 짐 버든(Jim Burden)의 회고 형식으로 진행된다. 짐은 부모님을 잃고 네브래스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보헤미아(현재의 체코) 출신 이민자 소녀인 안토니아 쉬메르다(Ántonia Shimerda)를 만나게 되며, 두 사람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안토니아의 가족은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가난과 힘든 노동, 그..

이것저것 2025.02.01

나이가 중요할까?

어느 소설에서 본 "촌놈은 나이가 벼슬”이란 표현은 한국어 속담 중 하나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을 비꼬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속담은 특히 시골 출신의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를 내세워 권위를 주장하는 상황을 풍자한다. 이 표현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비판하며,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의 행동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이가 벼슬일 수도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들이 처음 만난 상대의 나이에 유독 관심을 갖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문화적, 사회적 요인이 있겠지만,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유교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아왔으며, 이에 따라 연장자에 대한 존중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나이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

이것저것 2025.01.26

나목과 고목

아침에 일어나 창문의 블라인드를 열고 하늘을 가리는 나목을 보니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연상된다. 며칠째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니 올해 겨울은 참 춥다. ‘고목은 말라서 죽어 버린 나무라 소생할 가능성이 없지만, 나목은 벌거벗은 나무로 봄이 오면 다시 새 생명을 틔울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글이 생각난다.나이 들어가며 겨울나기가 점점 힘겨워져서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내 늙은 몸이 나목이 아닐까 싶다. 고목에 새순이 돋아 소생하기도 한다는데 나목이 소생하는 거야 흔한 일이 아니던가. 책꽂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20여 년 전 큰딸이 졸업 논문으로 쓴 ‘실비아 플라스와 박완서 소설 속 감금과 여성 발달의 은유’를 찾아보니 ‘부모님의 모든 사랑과 희생을 위해’라는 헌사가 보인다. 강추위이지만, 몸과 마음..

이것저것 2025.01.09

2025년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이 같은 날이 되는 주기는 보통 19년에 한 번 정도라고 한다. 이는 음력과 양력이 약 19년 동안 겹치는 주기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기도 완벽하지 않아서 날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올해 달력을 보니 내 양력 생일(3월 26일)과 음력 생일(2월 27일)이 정확히 같은 날이다. 이거 아무래도 좋은 징조인가 보다. 여기서 또 공학도의 궁금증이 발동했다. 서기 1년부터 2,025년까지를 나타내는 자연수 중에서 제곱근이 정수인 해는 몇 번이나 있을까? 1, 4, 9……이렇게 몇 개를 꼽아보다가 인공지능에 물어보니 총 45개의 숫자를 나열했다. 2025(45x45)도 그런 숫자다. 그리고 89년 전인 1936년과 91년 후인 2116년도 그런 해다. 이런 해를 맞는 것도 100년..

이것저것 2025.01.02

Auld Lang Syne

나이 들어 가며 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잦다. 오늘 아침 일찍 책상 앞에 앉아 달력을 보니 12월 30일이다. 올해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인공지능에 연말에 자주 듣게 되는 음악, Auld Lang Syne에 관해 찾아보았다. 올해, 2024년에는 인공지능의 신세를 참 많이 졌다. 인공지능과 합작으로 책도 두 권이나 번역했지만, 사용료 한 푼 내지 않았으니 고마운 일이다. 인공지능 덕분에 편해진 일이 많지만, 스스로 수고하지 않고 쉽게 처리하니 직접 애써 얻는 기쁨을 많이 잃고, 뭐든 가볍고 쉬워지는 세상사가 조금은 걱정스럽다. 아랫글은 인공지능이 찾아 준 글을 요약한 것이다."Auld Lang Syne"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민요로,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이것저것 2024.12.30

시끄러운 세상과 조용한 세상

어릴 적에 중이염에 걸렸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후유증으로 평생 어려움을 겪었다. 고막이 진동하지 않는 오른쪽 귀로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고, 청력이 30% 정도 모자라는 오른쪽 귀에 의존해서 지내다 보니 문제가 적지 않았다. 1. 목소리가 작은 교사의 강의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 시험 성적은 언제나 빵점이었다. 그래도 홀로 공부하는 능력과 집중력이 탁월했던지 어릴 적 학교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아마도 집중 능력은 잘 들리지 않는 귀 덕분이었을 지도 모른다.2. 목소리가 작은 직장 상사에게는 능력이 시원치 않고, 좀 얼뜬 부하직원으로 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직장에서는 목소리 큰 직원이 대다수였다.3.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도 알아들은 체하다가 엉뚱한 대답을 하는..

이것저것 2024.11.16

계란 껍데기 깨기

오늘 아침에 삶은 계란 두 개를 깨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계란의 어느 부분을 깰까? 별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개 계란의 중간 부분을 식탁에 두들 겨서 껍질을 깐다. 때로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계란의 양쪽 끝부분 중 어느 부분이든 생각 없이 식탁에 두들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나처럼 별생각 없이 계란을 잡고 어느 쪽이든 식탁에 두들겨서 껍질을 깔 것이다. 어떻게 깨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여길까? 살 만큼 살아보니 큰 일을 두고 깊이 고민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계란 껍데기 깨기보다 더 자잘한 일을 두고 앙앙불락하느라 마음 편히 보내지 못 한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영국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1726년 작 풍자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릴리퍼트라는 작은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본래 삶..

이것저것 202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