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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사라지고 이야기는 남았다

얼마 전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에 있는 '사이트 앤 사운드 극장(Sight & Sound Theatres)'에서 뮤지컬《JOSHUA》를 보았다. 노래와 연기, 안무는 물론 거대한 무대장치와 영상이 어우러져 성경 속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눈앞에 생생히 펼쳐 놓는 작품이었다. 여호수아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읽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이야기, 요단강을 건너고 예리코 성을 무너뜨린 이야기. 그래서 공연을 보기 전에는 '이미 아는 내용을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줄까' 하는 호기심 정도만 있었다. 하지만 막이 오르자 생각이 달라졌다. 관객을 둘러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객석 가까이 다가오고, 잘 훈련된 동물들이 무대를 거쳐 객석 통로로 이동하고, 거대한 구조물과 영상이 어..

신앙 생활 2026.09.24

수술은 대성공

아내가 어제 왼쪽 눈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오른쪽 눈에 같은 수술을 받은 지 거의 두 달 만이다.간단한 수술이라 해도 수술은 수술인지라, 두 달 전에는 두 딸도 조금 긴장했던 모양이다. 전화와 카톡으로 수술은 잘 되었는지 몇 번씩 물어보더니, 이번에는 별다른 기척이 없다.아내도 마찬가지다. 처음 수술을 받았을 때는 수술 후 나타나는 작은 증상 하나에도 꽤 민감하게 반응하더니, 이번에는 제법 태평스럽다.오늘 아침, 잠에서 깬 아내에게 눈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괜찮아.”그래도 나는 한 번 더 물었다.“내가 몇 살로 보여?”아내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스물일곱으로 보이는데.”아무래도 이번 수술도 대성공인가 보다.

가족 이야기 2026.09.23

2000개의 게시물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페이스북을 여는 것이다. 며칠 전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2000 posts’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페이스북을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올린 게시물이 드디어 2000개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참 열심히도 올렸다. 오랫동안 페이스북을 해온 것치고는 친구가 그리 많지 않다. 고향 친구, 동문, 예전 직장 동료 등 대부분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다. 150명을 넘어서면 소식이 뜸한 친구부터 정리해 버리니 친구 수가 늘어날 리도 없다. 친구 신청이 들어와도 프로필을 한번 살펴본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곧바로 거절한다. 특히 젊고 예쁜 여성의 친구 신청은 더더욱 그렇다. 나처럼 나이 든 영감에게..

이것저것 2026.09.21

가까이 다가오지 않아도

오늘 새로 이사 온 이웃 남자와 통성명을 했다. 배가 몹시 나와 걷는 것조차 거북해 보이는 그가 “If you need anything, let me know.”(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라고 말하니 조금 우스웠다. 속으로 ‘누굴 돕기에 앞서 살부터 빼야겠어요, 아저씨’ 하고 혼잣말을 삼켰다. 미국에서 45년을 살며 여러 번 이사했고, 새로운 동네에서 낯선 이웃을 만나는 일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바로 “If you need anything, let me know”다. 오늘 만난 배불뚝이 프랭크도, 병색이 완연해 보이던 잭도, 휴대용 산소탱크를 끌며 걷던 조앤 할머니도 그랬다. 남을 돕기에는 신체적으로 한계가 있어 보이던 이들조차 약속이라도 한 듯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

미국 생활 2026.09.19

엄지를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우리 콘도미니엄 단지 모퉁이에 노부부가 산다. 할아버지가 집앞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자주 보이는데 할머니를 본 지는 오래되었다. 예전에는 가끔 동네 둘레길에서 두 분을 마주쳤다. 키 작은 할아버지가 키 큰 할머니를 부축해 천천히 걸었다. 할머니는 몸이 편치 않은지 늘 무표정했고,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미소지으며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힘내시오’라는 뜻이었을까. 말없이 건네는 그 인사가 나는 좋았다. 올봄부터는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할아버지가 뒤에서 천천히 밀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할아버지 혼자 집 밖을 거니는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 걸음이 더 느려졌고, 그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서너 주 전 어느 저녁에는 그 집 앞에 경찰차와 응급차 여러 대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서 있었다. 무..

미국 생활 2026.09.17

여주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

가까이 지내는 분이 집에서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한 보따리 주셨는데, 그 안에 여주 두어 개가 들어 있는 것을 보니 반가웠다.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아버지가 여주만큼은 꾸준히 길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열아홉 살이던 여름에 돌아가실 때까지 그랬다. 아버지는 늘 늦가을이면 나무껍질을 쪼개 놓은 듯한 특이한 모양의 씨앗을 말려 간직했다. 그러다가 봄이 오면 잊지 않고 집 앞 자그마한 뜰 귀퉁이에 심었다. 싹이 트고 덩굴이 뻗기 시작하면 굵은 실을 얼기설기 엮어 타고 오르기 쉽게 해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아버지가 낯설었다. 여주는 수세미와 비슷한 모양에 울퉁불퉁한 껍질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유자’, 중국에서는 ‘쿠과(苦瓜)’, 일본에서는 ‘니가우리(苦瓜)’라고 하며, 영미권에서는 bit..

시간여행 2026.09.15

오빠라는 말의 무게

미국에서 살아온 지도 긴 세월이 흘렀고, 내 나이도 이제 여든을 바라본다. 여기에 가끔 은근히 잘난 체하는 습관까지 더해지니, 세상이 말하는 ‘꼰대’의 조건을 제법 갖춘 셈이다. 나는 3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여섯 남매 가운데 미국에 터를 잡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당연히 두 여동생은 지금도 나를 ‘오빠’라고 부른다. 그 다정한 호칭을 들을 때면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풍경이 눈앞에 아련히 떠오른다. 특히 막내 여동생은 한동안 나를 ‘둘째 오빠’라고 부르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혀 짧은 소리로 ‘째빠’라고 부르곤 했다. 우리 집안에서만 통하던 그 별스러운 호칭은 지금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난다. 그래서 내게 ‘오빠’라는 말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함께 자라며 쌓아 올린 시간과, 핏줄 사이에 흐르..

이것저것 2026.09.13

부부 이름이 거의 같아서

살다 보면 사소한 문제로 번거로운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이름’이 바로 그렇다. 철자가 거의 같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한글로 표기하면 전혀 혼동되지 않을 이름이 영문으로 적으면 거의 같아 보여서 그렇다. 얼마 전, 부부 모두 발에 불편함을 느껴 이웃이 추천해 준 다리 전문 병원을 찾았다. 첫 방문이라 접수 창구에 보험 카드를 제출하고 인적 사항과 병력 등을 적은 뒤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마치고 맡겨둔 보험 카드를 돌려달라고 하자, 접수 직원이 컴퓨터 화면과 서류를 번갈아 보며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부가 함께 병원이나 관공서를 다니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광경이기에, 나는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우리 부부 이름 때문에 좀..

가족 이야기 2026.09.10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 몸으로 때우는 사람

오래전,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의 일이다. 나는 7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던 서비스 부서에서 초급 관리자(과장)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서비스 부서는 경리와 일반 사무를 담당하는 내근직, 수리실에서 일하거나 고객의 가정을 방문하는 현장직, 그리고 서비스 차량을 운전하며 수리 기사를 돕는 운전직으로 나뉘어 있었다. 세 그룹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어느 날, 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한 젊은 서비스 기사가 혼잣말처럼 이런 말을 했다.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편하게 살고, 몸으로 때우는 사람은 힘들게 사는 법입니다.” 불만에 찬 고객에게 시달리다 돌아온 그는 사무실 직원과 가벼운 언쟁을 벌인 뒤 이 말을 내뱉었다. 당시의 나는 그 말을 그저 현장의 고단함에서 나온 푸념쯤으로 생각했다..

시간여행 2026.09.07

어린 시절의 호기심은 늙지 않는다

얼마 전 중고책을 판매하는 웹사이트에서 내가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 《위니 더 푸(Winnie the Pooh)》의 원작 전집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우리 딸들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곰돌이 푸’가 주인공인 책이었다. 마침 가격도 싸서 바로 주문할 뻔했다. 그러나 ‘그 나이에 아직도 그런 책에 돈을 쓰느냐’며 마님이 한마디 할 것 같아 결국 포기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1950년대 어린 시절, 고향 오십천변 사대광장에서 미국문화원이 가끔 상영해 주던 만화영화를 보면서부터였다. 그 후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만화영화를 보았다. 고양이와 쥐가 아웅다웅하는 《톰과 제리》, 새인데도 하늘을 날지 않고 늘 땅 위를 쏜살같이 달리며 코요테와 쫓고 쫓기는 《로드 러너》, 그리고 동화를 바탕으로 한..

가족 이야기 202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