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사소한 문제로 번거로운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우리 부부에게는 ‘이름’이 바로 그렇다. 철자가 거의 같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 종종 생긴다. 한글로 표기하면 전혀 혼동되지 않을 이름이 영문으로 적으면 거의 같아 보여서 그렇다.
얼마 전, 부부 모두 발에 불편함을 느껴 이웃이 추천해 준 다리 전문 병원을 찾았다. 첫 방문이라 접수 창구에 보험 카드를 제출하고 인적 사항과 병력 등을 적은 뒤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마치고 맡겨둔 보험 카드를 돌려달라고 하자, 접수 직원이 컴퓨터 화면과 서류를 번갈아 보며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부가 함께 병원이나 관공서를 다니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광경이기에, 나는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우리 부부 이름 때문에 좀 헷갈리시죠?”
우리 부부의 영문 이름을 나란히 적어놓으면 누구라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성(Last name)이야 당연히 둘 다 'Kim'으로 같고, 다섯 글자로 된 이름(First name)은 딱 가운데 한 글자만 다르다. 게다가 이름의 첫 글자만 따서 적는 미들 네임(Middle Initial)마저 둘 다 'G'로 똑같다. 서류상으로 보면 철자 단 하나를 빼고는 완전히 동일한 이름인 셈이다.
이해하기 쉽게 표기하면 이런 식이다.
ABXCD G. KIM (남편)
ABYCD G. KIM (아내)
내가 철자의 차이를 설명해 주자, 그제야 직원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서류 정리를 마친 그녀는 웃는 얼굴로 보험 카드를 돌려주었다.
단 한 글자 차이로 벌어지는 소소한 해프닝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은행 직원은 “왜 똑같은 이름을 두 번이나 적으셨냐”며 의아해하기 일쑤고, 병원 진료를 예약하면 내 안내문은 아내의 이메일로, 아내의 안내문은 내 메일함으로 들어가 서로 일정을 다시 확인하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얼마 전 혈액 검사 결과를 받았을 때다. 검사 결과지 아래에 적힌 문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귀하는 서류상 성별을 여성으로 표기하셨으나, 염색체 검사 결과 남성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정보에 오류가 있다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날 같은 임상병리실에서 피를 뽑았는데, 직원이 검체 용기의 라벨을 바꾸어 붙이는 바람에 생긴 소동이었다. 멀쩡한 남편과 아내의 염색체가 뒤바뀌어 버린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오며 운전면허증, 시민권 증서, 여권, 그리고 온갖 금융 문서에 등록된 이 이름을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복잡한 서류 절차를 생각하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가끔은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이 모든 번거로움을 한 번에 해결하는 가장 깔끔한 방법은 아내를 바꾸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헌 아내가 새 아내로 바뀐다는 상상만으로도 은근히 가슴이 셀레는데,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한 것조차 죄가 되는 건 아니지 모르겠다. 성당에서 미사 중에 바치는 기도문에도 “셍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라는 구절이 있던데…
(2026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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