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영자야, 여보야, 그리고 자기야

삼척감자 2026. 5. 5. 21:06

나의 아버지는 내가 열아홉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래서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쉰을 넘기지 않은 젊은 얼굴로 남아 있다. 그 젊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부를 때면 늘영자야하고 큰딸의 이름을 불렀다. 정작 어머니의 본명은순자였건만, 아버지는 끝내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신기한 것은, 우리 형제들이 그 부름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한 번도 헷갈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딸을 부를 때와 아내를 부를 때, 아버지 목소리의 결은 사뭇 달랐다. 아주 미묘한 높낮이와 힘의 차이였지만, 그 안에는 분명 다른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름은 같았으되 부름은 달랐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언제나여보혹은당신으로 부르셨다. 지금 와 생각하면, 아버지가 누님의 이름을 빌려 부르셨으니 어머니도 큰아들 이름을 따서영기야라고 맞받아 부르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게 된다.

 

우리 부부는 오십 대 후반이 될 때까지 서로를 부르는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없이, 그저 “OO 아빠”, “OO 엄마로 살아왔다. 아이를 중심에 두고 부부가 그 주변을 맴돌던 세월이었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내의 제안으로 처음여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 한마디를 입에 올리기까지 이토록 긴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도 낯설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제야 비로소 자식의 이름을 건너, 서로를 직접 마주 보며 부르기 시작한 셈이다.

 

요즘 젊은 부부들을 보면 아내가 남편을오빠라 부르고, 서로를자기야라 부르는 모습이 흔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그 호칭들이 익숙지 않다. 남매 사이도 아닌데오빠라니 어딘가 어색하고, “자기라는 말은 내게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진다. 머리로는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면서도, 귀는 좀처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고리타분한 마음을 두고꼰대라 불린다 해도 딱히 할 말은 없겠다.

 

돌이켜보면 부부의 호칭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했다. 조선시대에는서방님’, ‘나리같은 말 속에 엄격한 질서와 예의가 담겨 있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이 곧 존중이었던 시절이다. 그 뒤로여보당신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름과 애칭이 뒤섞이며, 다양한 호칭이 공존하게 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도 말맛은 달랐다. 어떤 곳에서는 짧고 툭 던지듯 부르고, 어떤 곳에서는 한 박자 늦춰 부드럽게 건넨다. 또 어떤 곳에서는어이같은 투박한 소리가 정겹게 오간다. 표현은 달라도 그 안에 담긴 삶의 온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지금은 지방에 따른 차이들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표준어가 널리 보급된 덕이겠다.

 

미국 사람들의 경우는 또 다르다. 그들은 평소 이름을 부르다가도 때로는 “Honey”, “Babe” 같은 애칭을 자연스럽게 섞어 쓴다. 그들에게 호칭은 순간의 감정을 담는 그릇에 가까워 보인다. 이름 하나에도, 애칭 하나에도 그때그때의 마음이 실리는 것이다.

 

호칭에는 정답이 없다. “영자야, “여보, “자기야도 모두 그 시대와 사람의 마음이 빚어낸 무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호칭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부름에 어떤 마음을 담느냐일 것이다. 이름을 빌려 부르든, 애칭을 나누든, 혹은 한마디 말 없이 눈빛만으로 서로를 알아보든, 결국 부부는 그렇게 평생 서로를 불러가며 완성되어가는 존재이니까.

 

(2026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