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꿈은 금세 잊혀 버리니, 따지고 보면 거의 다 개꿈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꿈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꿈이 미래를 정확히 예지한다는 증거는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알고 있다. 물론 어떤 꿈이 우연히 미래의 사건과 맞아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뿐 꿈이 미래를 알려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가끔은 유난히 선명하고 의미가 있을 것 같은 꿈을 꾸면 인터넷에서 꿈 해몽을 찾아본다. 그리고 복권을 살지 말지를 잠시 따져 본다. 드물게 꿈에서 귀인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꼭 복권을 사곤 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맞아 본 적이 없으니, 그 꿈들 역시 결국은 개꿈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꿈속에서 오매불망 그리던 흑돼지를 만나 복권에 당첨되어 인생이 뒤집힐 수도 있으려니 하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산다.
꿈에서 세상을 떠난 분들을 만나면, 작은 화살기도라도 바치는 것을 나름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반대로 흉몽을 꾸면 애써 아전인수로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는 얼른 잊어버린다. 꿈이란 대개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런데 엊그저께 새벽에는 정말 환상적인 꿈을 꾸었다. 말 그대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화면 같은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비행기를 타고 높은 산을 따라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의 능선과 골짜기에는 초록빛 숲이 가득했고, 그 사이사이에 빨간 지붕, 파란 지붕을 얹은 이국적인 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치 색색의 장난감 집들을 산자락에 정성껏 늘어놓은 것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그 꿈의 뜻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의 꿈 해몽은 제법 근사하게 풀어 놓고 있었다.
요컨대 이 꿈은 “거침없는 상승세와 다채로운 성공의 예시”라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인생의 중요한 목표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총천연색 지붕들처럼 다양한 성취와 행복한 순간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또한 지금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넓은 안목을 믿고 나아가라는 응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꿈풀이를 읽고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나이 여든이 다 되어 특별히 할 일도 없이 지내는 내게 무슨 ‘거침없는 상승세’이며 ‘다채로운 성공’이란 말인가. 그때 문득 성경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흔 살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창세 18,12)
나 역시 “이 또한 개꿈이겠지.” 하고 웃으며 습관처럼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때 큰딸에게서 온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큰딸의 딸, 그러니까 내게는 큰외손녀가 가장 가고 싶어 하던 사립 고등학교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곧바로 조금 과장된 축하 메시지를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새벽에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그래서 슬그머니 생각을 바꾸어 보았다. 그 꿈을 내가 아니라 외손녀가 꾼 것으로 치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러면 ‘거침없는 상승세’와 ‘다채로운 성공’은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아이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일 테니까.
나는 속으로 외손녀가 그 말처럼 밝은 길을 걸어가기를 빌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 꿈 덕분에 외손녀가 입학 허가를 받은 것 같은 착각까지 잠깐 들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 스쳐 간 생각일 뿐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나이든 영감의 소소한 주책일 것이다.
(2026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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