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미국 주재원 발령과 함께 시작된 타향살이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먹고사는 문제는 없었을지언정, 쏟아지는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은 출구 없는 미로 같았다. 게다가 언어의 장벽까지. 그 거대한 중압감에 짓눌려 나는 늘 숨 가쁜 나날을 보냈다.
아내의 삶 또한 고단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집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힌 채,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이들 사이에서 한 살과 세 살배기 두 딸을 건사하는 일. 산 설고 물 설은 타국 땅에서 아내가 감내했을 고립감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두 해가 흘러 큰아이가 유치원에 갈 무렵, 우리 집 거실 한쪽에 '위니 더 푸'가 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화면 속 노란 곰에게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그 애니메이션이 바로 ‘곰돌이 푸의 모험(The Many Adventures of Winnie the Pooh)’이었다. 주제곡만 흐르면 작은딸은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씰룩이며 “위니 야야!”를 외쳐댔다. 엉성한 발음과 서툰 박자였지만, 그 몸짓만큼은 세상 어떤 언어보다 투명하고 진실했다. 아이는 온몸으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 천진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와 아내는 비로소 말없이 숨을 골랐다. 켜켜이 쌓인 피로와 불안이 잠시 뒤로 물러나던 시간. 아이들의 웃음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직은 괜찮다'고 느꼈다. 푸의 세계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였지만, 고단한 우리 부부에겐 피난처였다.
"푸는 여전히 말한다.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라고."
세월이 흐르며 텔리비젼 스탠드에는 푸의 비디오테이프가 하나둘 쌓여갔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우리 부부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것은 우리가 완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자라 저마다의 삶을 찾아 멀리 떠났고, 거실에서 엉덩이를 흔들던 꼬마 숙녀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지만 가끔 푸에 관한 기사나 영상을 대할 때면, 그 시절의 공기가 훅 끼쳐온다. 화면 속엔 여전히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곰돌이 푸와 소심한 피글렛, 우울한 이요르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로 실수를 반복하는 티거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두 딸과, 아이들 뒤에서 조용히 미소 짓던 젊은 날의 우리 부부가 서 있다.
‘위니 더 푸’는 사실 이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로빈이 숲을 떠났듯, 우리도 그 시절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떠났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함께 견뎌낸 시간은 기억의 형태를 바꾸어 우리 안에 영토로 남는다.
문득 영화 속에서 푸가 어른이 된 로빈에게 물었던 말이 떠오른다. "로빈, 너는 왜 더 이상 웃지 않니?"
세월은 흘러 작품 속 캐릭터는 늙지 않는데 나만 나이 드는 것 같아 씁쓸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푸는 매일 맞이하는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라 말한다. 우리가 그 고된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대단한 성공 때문이 아니라 하루의 끝에 잠시 머물 수 있는 이 다정한 영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숲은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숨 쉬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2026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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