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멀리 해외에 머물고 있는 큰딸이 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맞는 소회를 담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었다. 내년 6월까지 그곳에서 지내게 된 딸은, 부모와 떨어져 살아가는 마음의 무게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두 딸 모두 멀리 살고 있으니 명절이 오면 쓸쓸함이 밀려오고, 외손자와 외손녀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각자의 꿈을 위해 걸어가는 길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우리 부부에게는 언제나 더 크게 자리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부부는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넉넉히 받지 못했다. 나의 부모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강해서 3남 3녀인 자식들 중 유독 장남을 편애했고, 아내는 네살일 적에 모친이 세상을 떠났기에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서인지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에도 “(양가 통틀어 한 분 뿐인) 나의 어미니가 우리를 그리워하시겠지”라는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은 많지 않았다. 딸들이 멀리 떠났을 때에도, 그 아이들 마음속에 어떤 미묘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스며 있을 거라는 사실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나 큰딸의 글을 읽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저며 왔다. 명절 식탁에 함께할 수 없어서 딸이 느끼는 미안함, 부모를 향한 애틋함과 책임감—그 모든 것을 이제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진심이 있다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쪽이 저릿한 것은 숨길 수 없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부부는 늘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두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들이 선택한 길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사실이다. 멀리 있어도 마음에서 멀어진 적은 없고, 떨어져 있어도 이어진 정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
명절의 식탁이 조용해지고, 손주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집이 문득 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빈자리마저도 아이들의 꿈이 자라나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딸이 쓴 글 덕분에 마음속 빈자리들이 다시금 따뜻하게 채워졌다는 것을 느낀다.
멀리서 제 삶을 일구어 가는 아이들의 내일을 떠올리며, 오늘도 우리는 그들을 향한 응원의 마음을 조용히, 그러나 든든하게 밝히고 있다.
(2025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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