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이 80이 된다는 이웃 영감이 나와 산책길에서 마주치면 그가 꺼내는 대화는 대개 정해져 있다.첫째는 날씨 얘기. 둘째는 허리가 아파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 이 얘기를 할 때는 꼭 얼굴을 찌푸린다. 셋째는 근처에 사는 메리라는 좀 젊은 할머니 흉을 보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의 호칭은 까칠녀(사실은 ㅁㅊㄴ이라고 부르는데 조금 순화해서)이다. 오늘 아침에는 까칠녀 얘기를 먼저 꺼내었는데, 무슨 국가 기밀 얘기하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좌우를 둘러보며 얘기를 시작했는데, 내용이라야 늘 듣던 거라서 별 거 없다.“조금 전에 까칠녀가 산책하는 걸 보았어. 자네 그녀를 보면 주의하게. 눈 마주치지 말고. 말 걸지 말게나. 알았지?”그 영감과 까칠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