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68

하늘이 부르실 때

100세 장수 시대라고는 하나 남녀 평균 수명이 90세가 넘는 나라는 없으니 장수 국가로 손꼽히는 나라의 국민도 대개 80대에 세상을 떠난다고 봐야 한다. 남자의 평균 수명만 놓고 보면 이들 국가의 남자들은 대개 80세를 전후하여 세상을 떠난다고 하며, 건강 수명만 보면 70대 중반 이후에는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침 산책을 나서다가 옆집에 사는 잭(Jack)을 만났다. 늘 그렇듯이 우는 듯 웃는 듯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짓는 미소, 느릿느릿 걷는 발걸음이 측은해 보인다. 일주일에 세 번 받는다는 신장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매번 네 시간씩 걸린다는 그 과정이 얼마나 지겨울까? 일흔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신장을 이식받는 건 생각하기 어려울 테니 하늘이 부를..

미국 생활 2023.05.25

나이 들어가니 걱정거리는 늘고

아침 산책길에서 자주 만나는 시(Shi)할머니는 중국 태생이고, 추(Chu)할머니는 대만 태생이다. 두 분 모두 84세로 동갑인데, 공교롭게도 생년월일조차 똑같으니 무슨 운명의 끈으로 연결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두 분은 같이 다닐 때가 많고 거의 매일 아침 함께 산책한다. 아침마다 팔을 앞뒤로 힘차게 휘두르며 4 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니 그 나이에 참 대단한 일이다. ‘시’ 할머니는 20여 년 전 바람피우던 남편을 내쫓았고, ‘추’ 할머니는 오래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지만, 두 분은 시도 때도 없이 오가며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며 지낸다. 며칠 전 아침에 ‘시’ 할머니 혼자서 산책하기에 ‘추’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분은 다리가 아파서 그날은 걷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

미국 생활 2023.05.02

우리 이웃에 사는 백인 영감

우리 이웃에 사는 백인 영감의 차 뒤 범퍼에는 “나는 해병대 헌병 출신이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의 집 앞에 있는 작은 화단에는 크고 작은 성조기가 여남은 개나 꽃혀 있는데, 한쪽 끄트머리에는 조금 큰 성조기와 해병대 깃발이 일 년 내내 펄럭인다. 궁금해서 얼마 전에 언제, 얼마 동안 해병대원으로 복무했는지 물어 보았더니 겨우 2년, 그것도 아주 오래 전, 젊었을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해병대원이었음을 긍지로 여기고, 조국을 위해 복무했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애국심을 드러내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미국인들은 제복을 입은 군인, 경찰, 소방관을 존경하며, 군 제대 후에도 연금, 의료 혜택 제공 등에 많은 배려를 해 준다. 그러니 그 영감이 군 경력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할 수밖에. 한국도 그런 사회가 되..

미국 생활 2023.05.01

나이 들면 모두 환자라던데

내가 L 목사를 처음 만난 건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온 직후였으니 4년 전이었다. 어느 날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있는데 나보다 나이 조금 더 들어 보이고 점잖게 생긴 분이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본인이 목사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체육관에 나오는 다른 한국인에게서 그분이 근처에 있는 한국 교회에서 사목하다가 은퇴한 원로 목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가끔 점심도 함께하고, 집에서 만든 음식도 나눠 먹고, 그분의 안내로 영어 공부도 함께 하며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다른 종교를 믿어도 그게 전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괜히 목사티를 내며 성경 말씀을 가르치려 든다든가, 가톨릭을 은근히 비난하며 개종을 권한다든가 하는 일 없이 오로지 일상적 얘기만 나누니 신앙이 다른 게 문제가 되려야 ..

미국 생활 2023.04.06

바닷가 가까이 있는 식당에서

바닷가 가까이 있는 식당에서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즐겼다. 식대를 계산하려고 크레딧 카드를 주고서 받은 청구서를 보니 50여 달러를 Discount해 준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 온 손님이라서 그랬던 것 같은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가격대가 괜찮아서 선택한 식당인데 에누리까지 받으니 기분이 좋아서 팁을 25% 정도로 넉넉하게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이틀 지나고 생각해 보니 더 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또 가면 그때 더 주어야 하겠다. 한국 식당도 밑반찬 종류를 줄인 점심 메뉴와 모두 갖춘 저녁 메뉴로 구분하여 두 가지 가격대를 적용하면 좋겠다. 한국 식당의 식대가 너무 비싸서 찾기가 망설여 질 때가 잦다. 때로는 젓가락도 대지 않은 밑반찬 값까지 지불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짓수가 지나치게 ..

미국 생활 2023.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