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85세인 중국 태생 할머니 헬렌을 만났다. 외출복을 입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어쩐지 쑥스러워하더니 외출하는 까닭을 설명했다.
“오늘이 딸들 아버지 49재 날이라서 무덤에 가려고 하던 참이야. 당신, 49재가 뭔지 알지?”
“알다마다요. 전 남편이 오늘까지는 지상에 머무르다가 내일이면 천국으로 떠나겠네요?”
“전 남편이라기보다는 애들 아빠지. 밤새 무덤에 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느라 잠 한숨도 못 잤어. 그런데 떨어져 사는 딸들이 꼭 가봐야 한다고 강요하니 어쩔 수 없이 무덤에 꽃이라도 두고 오려고 해.”
그녀는 기독교 신자라서 49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도 하지만, 20여 년 전에 바람피우다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다가, 그 여자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혼자 살던 전 남편에게 남은 정이 없다고 했다. 그저 딸들 아버지이기에 의무감에 마지못해 무덤을 마지막으로 찾는 거라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바람피운 남편이 용서가 안 되나 보았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이렇게 여자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