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엔지 할머니

삼척감자 2024. 6. 22. 06:49
에어컨 덕분에 시원한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습관대로 동네 한 바퀴를 걷기 시작했는데 좀 더웠다. 덥다 못해 피부에 와닿는 햇살이 따가웠다.
머리에 쓴 모자만 믿고 조금 걷다 보니 너무 더워서 포기할까, 말까 하고 갈등을 느끼는데, 마침 담배 피우러 집밖에 나와 있던 엔지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대강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되겠다. “스티브, 이 미친놈아. 너 죽으려고 환장했니? 당장 걷는 거 집어치우고 집으로 돌아가! 당장. 이놈이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구시렁구시렁……”
계속 걷기에는 더위보다는 할머니 욕설이 견딜 수가 없어서 바로 뒤로 전진해서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야, 이거 받아!”라는 고함이 들려서 돌아보니 바로 엔지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가 건네주는 페트병을 받아 드니 차디찬 물이었다. 바로 마시라고 하는데, 집에 있는 걸 마시겠다며 사양하고 되돌려 주기는 했지만, 참 고마웠다.
되돌아서는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마음속으로 제발 담배 끊고 만수무강하시라고 기원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오늘 최고 기온이 화씨 96도(섭씨 35.6도)이니 내가 미친놈 소리 들어도 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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