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10

비밀이 없는 세상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는 체육관에 갈 때마다 만나게 되는 한국인이 여러 사람 있다. 대부분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분들이라 볼 때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 받는다. 그 중에서도 M씨는 매일 빠짐 없이 출근해서 열심히 운동하는 모범생인데, 언제부터인가 그가 보이지 않더니 석 달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한국인들끼리 만날 때마다 그의 안부를 궁금해 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아픈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체육관에 나오면 늘 만날 수 있던 사람이라 그의 연락처를 받아 둔 사람이 없었다. 관리 사무실에 물어 보았지만 사생활에 관한 거라 연락처를 알려 줄 수 없다고 한다. 답답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구글에 그이 이름과 사는 동네 ..

미국 생활 2024.08.31

김원국 선생님

오늘 아침에 갑자기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이었던 김원국 선생님 생각이 떠올랐다. 학년말쯤에 그분이 군에 입대한다고 떠난 후 본 적이 없으니 60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내 기억에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날카로운 인상의 그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내 기억력에 구글 검색 기능을 더하여 그 당시의 기억을 재구성해 본다.   선생님은 4학년인 시골 아이들 앞에서 가끔 시를 칠판에 적어놓고 감정을 넣어서 읽어주고 학생들에게도 따라 읽게 하곤 했지만, 그 시들, 그것도 교과서에 실린 동시도 아닌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지금도 어느 날 칠판에 적어준 ‘내 소녀’란 시가 생각난다. ‘박사’란 낯선 단어와 ‘내 소녀’라는 단어가 생각나서 구글에서 시의..

시간여행 2024.08.25

환상통아 물러가라

몇 년 만에 아주 센 놈이 찾아왔다.환상통이라는 놈 말이다.어쩌다 찾아오는 그놈은 꼭 내가 잠자리에 들 무렵부터 아는 체하기 시작해서밤새도록 들볶는다. 수시로 바늘로 다리 절단 부위를 집중적으로찔러대는 것 같으니 잠을 잘 수도 없다. 가끔 견딜 수 없어서 신음을 내기도 한다.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별의별 진통제를 먹어 봐도 효과가 없다.통증 전문의, 내과의사의 처방전도 소용이 없다.그래도 물러갈 때를 알아서 소리 없이 사라지니 고맙다.찾아올 때마다 반갑지는 않지만, 덕분에 밀린 독서도 하고모아둔 영화도 골라 보기도 하니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이제 날도 밝았으니 그만 물러가고 제발 이제는 그만 찾아오너라.

교통사고 이후 2024.08.21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거든요.

The Hollies가 1969년에 ‘He Ain’t Heavy. He Is My Brother’라는 노래를 발표했을 때, 이 노래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 되었다.이 노래의 가사를 한국어로 번역해 소개해 본다.우리가 가는 길은 멀고도 구불구불해서 /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나는 강해서 얘를 업고 갈 수 있어요. /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거든요. / 그래서 나는 얘를 업고 갑니다. / 나는 얘가 편안하기를 바랄 뿐, / 내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 우리 그렇게 함께 갈 겁니다. / 얘가 내게 짐이 된다고 여기지 않기에, / 얘는 무겁지 않아요. 내 동생이거든요. / 나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지만, / 슬픔으로 마음이 ..

신앙 생활 2024.08.20

한국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

다음 글은 Tisiphone Rose라는 캐나다인이 소셜 미디어에 올린 “한국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번역한 겁니다. 외국인: “안녕하세요”한국인: 말없이 ‘내가 이 놈을 언제 봤더라’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외국인: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한국인: 못 본 체하며 전화기만 들여다 본다.  단 세 마디로 한국인과 친해지기. 외국인: “독도는 한국 땅입니다. 일본놈들이 지들 거라고 우기는데 말이 안 되지요.”한국인: “당근이지요!”외국인: “김치는 한국 음식입니다. 지들 거라고 우기는 중국놈들이 미친 놈들이지요.”한국인: “그놈들 말이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지요!”외국인: “북한은 국가가 아니지요.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지요.”한국인: “이렇게 말이 잘 통하다..

이것저것 2024.08.17

조셉이 세상을 떠났다

외출에서 돌아 오다가 이웃 할머니 조앤의 큰아들 지미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보았다.우리 부부를 보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저께 동생 조셉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이럴 때 쓰는 인사말 “I am sorry to hear about your loss.”도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머뭇거리는데,엄마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큰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했다.몇 년 동안 암으로 고생했기에 어쩌면 죽음이 그의 고통을 덜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40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조셉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두어 달 전에 만났을 때 조만간 키포트 바닷가 낚시터에서 보자고 했지만, 오랜 투병으로 병색이 짙은 그를 보며 그 약속을 지키기가 어려울 거로 생각하기는 했으니 막상 떠났다는 말을 들으니 ..

미국 생활 2024.08.17

세례 금경축일

50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74년 8월 15일에 천주교 전농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니 말하자면 오늘이 내 세례 금경축일인 셈이다. 그날 미사 중 세례를 받고 축하 인사를 받으며 가슴이 설렜다. 그다음 날이 당시 최고의 전자회사로 인정받던 G사로 첫 출근하는 날이기도 해서 행복한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성당에서 집으로 걸어가다가 하늘을 보니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랫부분이 노란색을 띠고 있어서 참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집에 돌아와 뉴스를 들으니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라는 자에게 흉탄을 맞고 서거했다고 해서 무척 놀랐다. 다음날 신문보도를 보니 서거 당시에 육여사가 입었던 한복 색깔이 서거한 시간에 하늘에 드러난 그 색깔과 비슷한 황금색이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신기해서 그 ..

신앙 생활 2024.08.15

조앤 할머니

체육관에 가려고 집을 나서다가 조앤 할머니를 만났더니 손짓하며 할 말이 있으며 기다려 달라고 한다.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낀 채 며느리의 부축을 받는 모습이 마치 바싹 마른 가랑잎 같았다. 늘 쾌활한 큰아들 지미의 얼굴은 침통해 보였다. 얼마 전에 들은 말이 있기에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했다.“스티브, 조셉(작은아들)이 입원했어.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아.”매사추세츠주에 사는 딸 내외도 얼마 전에 다녀가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큰아들 내외도 방문할 때마다 조셉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고 내게 말하곤 했다.아흔 가까이 된 할머니는 늘 산소호흡기를 끼고 지내지만, 건강은 그만그만한 것 같았다.조셉은 몇 년 전부터 암으로 투병 중이지만, 가끔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며 지낸다고 했다.부모 ..

미국 생활 2024.08.14

적산전력계 검침 문제

며칠 전 이메일로 온 7월분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달 치 전기 요금이 대개 $30~50였는데, 갑자기 $362로 치솟을 까닭이 없다. 대학교 때 전공과목 중 하나인 ‘전기계측’ 시간에 공부한 전력 사용량 측정기인 적산 전력계의 구조도 단순하여 고장이 날 일이 없다. 더구나 두 달 전에 아날로그식을 디지털식으로 바꾼 최신형인데 그 사이에 고장날 까닭이 없다. 분명히 검침원이 실수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1년간의 매달 전기 요금과 사용량 기록을 모았더니 그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전기 요금을 그대로 내고 그냥 두어도 잘못 부과된 요금은 앞으로의 검침을 통해 자동 정산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는 싫었다. 설사 앞으로 몇 달 동안 요금을 내지 않고 넘어가더라도 $50..

미국 생활 2024.08.13

영문 수필집 발행

교통사고 이후에 사고 후유증 치료를 위해 정신과 치료 전문의인 Dr. Kaplan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후유증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며 글쓰기를 강력히 권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글쓰기로 20년 가까이 쓴 글이 적지 않다. 어느 정도 분량이 모이면 책으로 묶다 보니 그동안 만든 책이 여섯 권이다.그동안 지나온 이야기를 두 딸이 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미국에서 자란 딸들의 한국어 독해력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 사위의 한국어 실력은 우리 딸들보다 떨어지고, 외손녀들과 외손녀들은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무척 힘든 일이고…얼마 전에 큰 외손녀가 문학 컨테스트의 단편 소설 부문에서 1등상을 받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혹시 인공 지능의 도움을 받..

가족 이야기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