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비밀이 없는 세상

삼척감자 2024. 8. 31. 20:48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는 체육관에 갈 때마다 만나게 되는 한국인이 여러 사람 있다. 대부분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분들이라 볼 때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 받는다. 그 중에서도 M씨는 매일 빠짐 없이 출근해서 열심히 운동하는 모범생인데, 언제부터인가 그가 보이지 않더니 석 달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한국인들끼리 만날 때마다 그의 안부를 궁금해 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아픈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체육관에 나오면 늘 만날 수 있던 사람이라 그의 연락처를 받아 둔 사람이 없었다. 관리 사무실에 물어 보았지만 사생활에 관한 거라 연락처를 알려 줄 수 없다고 한다. 답답해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구글에 그이 이름과 사는 동네 이름으로 검색했더니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그의 안부를 가장 궁금해하는 분과 함께 엊그제 그의 집을 찾았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는 그의 얼굴을 보니 조금 부은듯하지만 건강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친구 집을 방문했다가 정신병이 있는 그의 아들에게 귀부분을 세차게 한 대 맞은 게 문제가 생겨서 가끔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도 해서 의사의 권유에 따라 11월까지는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를 뒤로하고 떠나왔지만,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고 오니 마음이 놓였다. 정작 가해자는 자신이 폭행한 사실도 기억하지 못한다니, 참 어이없이 당한 사고라 할 수 있다.
이름과 사는 동네 이름 만으로도 주소와 집의 사진, 구조, 가족의 이름과 나이 등에 관한 인적 사항을 쉽게 알아낼 수 있으니 비밀이 없는 조금은 두려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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