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베어마운틴을 다녀와서

삼척감자 2024. 11. 1. 05:39

베어 마운틴 뉴욕 주립공원은 허드슨강 서쪽 강둑에서 솟아오른 산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에는 넓은 운동장, 그늘진 피크닉 숲, 호수 및 강 낚시터, 수영장, 박물관과 동물원, 하이킹, 자전거, 크로스 컨트리 스키 트레일 등이 있다. 야외 링크에서는 10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 베어 마운틴 꼭대기에 있는 퍼킨스 메모리얼 타워에서는 공원과 허드슨 하이랜드, 해리먼 주립공원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인 산 모양이 큰 곰이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고 베어마운틴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산세가 험준하지는 않은 편이다.

 

이사 오기 전에 오랫동안 살던 동네에서 베어 마운틴 뉴욕 주립공원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잊지 않을 만큼 찾던 산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전망이 좋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광, 특히 가을철 단풍이 볼만해서 성당에서 단체로 찾기도 했다. 산 정상 조금 못 미쳐서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걸어서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는 게  노인들에게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아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적합하다. 몇 년 전에 이사 와서 살고 있는 중부 뉴저지의 동네에서는 두 시간 정도 걸리니 운전해서 당일로 다녀오기는 좀 부담스러워서 베어마운틴이 불타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도 가 볼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다리 하나를 잃은 후로는 산을 탄다는 생각조차 않고 지냈는데, 얼마 전에 기회가 닿아서 체육관에 나오는 한국인들이 함께 배로 베어마운틴에 다녀오게 되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종일 편하게 유람할 수 있다니 그분들과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암 치료 중이라 기력이 떨어진 분이 주관하는 모임인데 내 다리 핑계로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에이, 산은 못 타더라도 밑에서 단풍 구경만 하고 오지 뭐.” 그렇게 해서 따라나선 당일치기 크루즈였다.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만나서 얼굴이 익은 데다가 모두 70대 노년기의 동포들인데 다들 점잖은 분이라 하루 종일 같이 지내도 마음이 편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포구에서 배가 떠나자 동승자들을 둘러보니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통근자들이 많이 승선했는데, 정장 차림에 작은 배낭을 멘 가벼운 차림의 젊은이들이 멋있어 보였다. 뉴저지 대서양 해변의 하이랜즈에서 출발하여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맨해튼에 잠깐 멈추어서 통근자들을 내려주고 허드슨강에 들어가서 베어마운틴에 도착하는 데 세 시간 정도 걸린다. 사방에 그림 같은 경치에 둘러싸여 달리는 배는 무척 빠르다. 바다와 강을 살같이 지난다고 노래한 산타루치아의 가사가 저절로 떠올랐다.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와 강을 지난다. (일부 개사)

 

출발 후 세 시간 만에 배가 베어마운틴에 도착하여 승객을 내려 주고 다섯 시간 후에 다시 돌아오니 그 시간에 다들 산 정상까지 오르내리는 하이킹을 한다. 정상에 오르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 경치가 장관이고, 호수도 아름다울 테지만, 나처럼 의족을 낀 사람과 항암치료 중이라서 기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두 할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게 못내 걸려서 뒤돌아보는 네 할머니에게 어서 올라가라고 손짓하고는 두 할아버지가 양지바른 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네 시간 넘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지루했냐고? 절대로 아니다. 둘 다 목소리 내는 게 편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종교, 역사, 문학…..등 다양한 주제로 네 시간 넘도록 대화했지만,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평생을 개신교 신자로 신앙생활을 한 분이라서 그런지 암과 싸우면서 늘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1년 반 정도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길 때는 좀 마음이 흔들렸나 보았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나 죽거든 화장한 다음, 유골은 내가 사랑하는 베어마운틴 꼭대기에 있는 나무 밑에 뿌려달라.”고 두 아들에게 말했더니, 사무적으로 그렇게 해 드릴 게요.”라고 대답하는 게 참 서운했다고 한다. “아버지 보고 싶을 때 찾아뵐 수 있게 무덤에 묻어드려야지요.”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서운함을 표했지만, 장례라는 건 어차피 죽은 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의 몫이니 잊으시라고 했지만, 매장이든 화장이든 미리 생각한다는 게 부질없다.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며 석양에 본 자유의 여신상 부근의 경관이 장관이었다.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베어마운틴에서 머물다가 되돌아올 때까지 보낸 시간이 11시간이었다. 뉴저지에 40년 동안 살면서도 이렇게 멋진 하루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여행도 즐거웠지만,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도 암을 이겨내고 거의 완치되었다는 판정을 받고 마무리 치료 중인 분과 하루를 함께한 것이 더 기쁜 일이었다.

 

(2024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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