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아내의 귀가

삼척감자 2024. 11. 4. 23:15

몇 주 전 산책길에 이웃 영감탱이(나보다 네 살 더 많은 백인)를 만났더니, “요즘 니 마눌님 안 보이네.”라고 물었다. 그래서 아내가 2주 예정으로 독일 여행 중이라는 얘기, 끼니때마다 밥 챙겨 먹기 귀찮다는 얘기, (운전을 못 하니) 꼼짝없이 갇혀 사는 답답함 등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만나도 별로 할 얘기가 없던 그 영감은 그 후로는 만날 때마다 밥은 잘 챙겨 먹냐?, 마눌님이 언제 오냐? 왔냐, 돌아오니 좋냐? 라며 실실 웃으며 나를 놀리듯이 물었다. 밥 한 끼 사준다거나, 어디 바람 쐬러 데려간다거나 하지 않고, 입으로만 걱정해 주는 체 해서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지만, 그 영감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그 영감도 뭐 그리 걱정해 주는 것 같지는 않았고 날씨 얘기 말고 달리 할 얘깃거리가 생겨서 잘 되었다는 투여서 나도 심심풀이로 땅콩 먹듯이 가볍게 대꾸하곤 했다.
가출했던 아내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귀가하고 반 달 정도 지났는데도 그 영감은 아직도 내 마눌님 타령이다. 이를 테면, “마눌님 돌아오니 좋냐? 끼니는 잘 얻어먹고 사냐?” 자는 얘기도 좀 물어봐 주면 좋으련만……그러면 내가 얼마나 기운찬 영감인지 허풍을 떨어 볼 텐데.
있던 사람은 있어야 편하고, 주로 얻어먹던 사람은 얻어먹어야 편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자는 건 어떠냐고?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70대요. 상상에 맡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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