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8

지적 장애인

내가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가는 체육관에 자주 오는 지적 장애인이 두어 명 있다. 그중 매우 뚱뚱한 여성 한 명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장애 정도가 심해 보인다. 기우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불안해 보이고, 서너 살 아기보다도 언어 구사력이 떨어져서 말하는 게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아서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녀를 뒤쫓아 다니며 보살피고 운동을 시키는 트레이너와는 어렵지 않게 소통하는 걸로 보인다. 사는 게 참 불편할 텐데도 그녀는 늘 미소를 짓거나 이유 없이 큰소리로 웃는다. 그러니 그녀가 체육관에 나타나면 무척 소란스럽다. 까닭 없이 실내를 휘젓고 다니고,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내지르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과 웃음소리 그리고 그녀를 계속 뒤쫓는 트레이너의 불안한 모습..

미국 생활 2024.11.13

이웃에 사는 조앤 할머니

이웃에 사는 조앤 할머니의 얼굴을 아는 동네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어쩌다 고물 자동차로 식자재를 사 들고 오는 게 눈에 띄지만,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지도 않고 늘 집 안에서 은둔하며 지낸다. 가끔 아들인 듯한 남자가 할머니 집에 잠시 머물렀다가 갈 뿐 사회생활을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도 문밖에 가끔 아마존에서 온 소포나, 아들이 장을 보아준 듯한 종이 봉지 몇 개로 그분이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서너 달 전부터 그녀의 모습도, 종이 봉지도 보이지 않고, 전기 요금이나 수도 요금이 연체되어 곧 차단될 거라는 경고문이 덧문 손잡이에 끼워져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어서 다른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아무도 아는 이가 없..

미국 생활 2024.11.12

영문으로 번역한 책을 만들어 보고

20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 적지 않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런 글은 대개 학교 동문과 예전 직장 동료들 그리고 성당 교우들이 읽었지만, 어릴 적에 미국에 왔거나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독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내 가족은 내가 한국어로 쓴 글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큰딸이 오래전부터 그런 글 중에서 일부라도 영어로 번역하여 외손녀와 외손자들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30대, 좀 늦은 나이에 미국에 오고 오랜 세월 특별히 영어 공부에 힘쓰지 않은 내 영어 실력으로는 어려웠다.그러다가 AI(인공지능)로 번역을 해 보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개씩 골라서 인공지능에 번역을 시키고, 그걸 다시 사전을 찾아가며 내가 교정을 본 다음 영문..

가족 이야기 2024.11.11

바닷가 식당

아주 오래전 같은 아파트에 살던 부부와 바닷가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했다.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처음 만나 아이들과 함께 캠핑도 자주 갔었는데,이제는 모두 70대 노인이 되어 멀쩡한 사람이 없다.한창나이에는 밤새워 술 마셔도 끄떡없었고, 손바닥보다 훨씬 큰 두툼한 고기를 거침없이 씹어삼켰는데, 지금은 맥주 한 병을 놓고 찔끔거리고,  주문한 식사를 나누어 먹으며 깨작거리다가 남은 건 싸들고 온다.화제도 아이들 얘기가 아니라 몸 여기저기가 말썽부리는 시원치 않은 건강 얘기다.두 남자는 운전대에서 손 놓은 지 오래되어 이제는 어디 갈 때마다 운전대를 잡는 마님 눈치를 봐야 하니 서글프다.그래도 만나자는 말에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그 부부가 고맙다. -사진: 식당 바깥의 가을 장식-

미국 생활 2024.11.08

처음 만난 영감이 말을 걸어왔다

산책길에 처음 만난 영감이 말을 걸어왔다.그: “당신, 혼자 사슈?” (혼자 사는 게 불법인가?)얼핏 봐도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게 인상이 고약하다.나: “마누라가 있소만, 왜요? (이럴 때는 마님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건가!^^)그: “앞으로는 마누라와 함께 걸으쇼. 걷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나: “걱정 마쇼. 이래 봬도 많은 돈 들여서 전문가에게 보행훈련을 받은 몸이요. 지난 20년 간 무사고 보행 기록도 있소.”그: “잘 걸을 수는 있겠지만,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질 수도 있지 않소.” (정말 이 영감 염장 지르고 있네)나: “내가 당신보다 엄청 건강한 것 같소. 엊그제 검진 받았는데, 의사가 완벽한 건강체라고 했소. 그 의사 전화번호 드려?”그: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소.” (정말..

미국 생활 2024.11.07

아내의 귀가

몇 주 전 산책길에 이웃 영감탱이(나보다 네 살 더 많은 백인)를 만났더니, “요즘 니 마눌님 안 보이네.”라고 물었다. 그래서 아내가 2주 예정으로 독일 여행 중이라는 얘기, 끼니때마다 밥 챙겨 먹기 귀찮다는 얘기, (운전을 못 하니) 꼼짝없이 갇혀 사는 답답함 등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만나도 별로 할 얘기가 없던 그 영감은 그 후로는 만날 때마다 밥은 잘 챙겨 먹냐?, 마눌님이 언제 오냐? 왔냐, 돌아오니 좋냐? 라며 실실 웃으며 나를 놀리듯이 물었다. 밥 한 끼 사준다거나, 어디 바람 쐬러 데려간다거나 하지 않고, 입으로만 걱정해 주는 체 해서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지만, 그 영감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그 영감도 뭐 그리 걱정해 주는 것 같지는 않았고 날씨 얘기 말고 달리 할 얘깃거리가 생겨서..

미국 생활 2024.11.04

계란 껍데기 깨기

오늘 아침에 삶은 계란 두 개를 깨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계란의 어느 부분을 깰까? 별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개 계란의 중간 부분을 식탁에 두들 겨서 껍질을 깐다. 때로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계란의 양쪽 끝부분 중 어느 부분이든 생각 없이 식탁에 두들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나처럼 별생각 없이 계란을 잡고 어느 쪽이든 식탁에 두들겨서 껍질을 깔 것이다. 어떻게 깨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여길까? 살 만큼 살아보니 큰 일을 두고 깊이 고민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계란 껍데기 깨기보다 더 자잘한 일을 두고 앙앙불락하느라 마음 편히 보내지 못 한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영국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1726년 작 풍자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릴리퍼트라는 작은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본래 삶..

이것저것 2024.11.04

베어마운틴을 다녀와서

베어 마운틴 뉴욕 주립공원은 허드슨강 서쪽 강둑에서 솟아오른 산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에는 넓은 운동장, 그늘진 피크닉 숲, 호수 및 강 낚시터, 수영장, 박물관과 동물원, 하이킹, 자전거, 크로스 컨트리 스키 트레일 등이 있다. 야외 링크에서는 10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 베어 마운틴 꼭대기에 있는 퍼킨스 메모리얼 타워에서는 공원과 허드슨 하이랜드, 해리먼 주립공원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인 산 모양이 큰 곰이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고 베어마운틴이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산세가 험준하지는 않은 편이다. 이사 오기 전에 오랫동안 살던 동네에서 ‘베어 마운틴 뉴욕 주립공원’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잊지 않을 만큼 찾던 산이었다. 그리 ..

미국 생활 202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