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 적지 않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그런 글은 대개 학교 동문과 예전 직장 동료들 그리고 성당 교우들이 읽었지만, 어릴 적에 미국에 왔거나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 독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내 가족은 내가 한국어로 쓴 글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큰딸이 오래전부터 그런 글 중에서 일부라도 영어로 번역하여 외손녀와 외손자들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30대, 좀 늦은 나이에 미국에 오고 오랜 세월 특별히 영어 공부에 힘쓰지 않은 내 영어 실력으로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AI(인공지능)로 번역을 해 보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개씩 골라서 인공지능에 번역을 시키고, 그걸 다시 사전을 찾아가며 내가 교정을 본 다음 영문학을 전공한 두 딸에게 보냈더니, 딸들도 그렇게 만든 번역문이 무난하다는 의견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두어 달 전에 내 어릴 적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을 묶어서 “Rise and Walk”라는 영문판 책을 만들어서 두 딸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곧 열네 살 되는 큰 외손녀가 관심을 갖고 틈틈이 읽는다는 얘기를 들으며 영문 번역본을 생애 처음으로 만들어 본 보람을 느꼈다.
아내가 반달 동안 독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밤잠을 줄여가며(아니, 설쳐가며) 내년 6월에 맞을 교통사고 20주년을 기념(좀 유별난 기념이긴 하다)하여 그간에 쓴 글 중 교통사고와 관련된 글을 따로 모으고 있었는데, 그걸 영문으로 번역하여 책으로 묶어 가족들에게 주고 싶어서 열심히 작업했다. 예상보다 이른 시일에 “Good Morning!”이라는 영문 책자를 만들어서 두 딸에게 보냈지만, 반달이 넘도록 아무 얘기가 없기에 실망했다. 몇 명 안 되는 독자들의 반응이 시원찮으니 괜히 쓸데없는 책을 만들었나 보다고 후회했다.
그런데 어저께 저녁에 작은딸과 화상통화하며 들은 얘기에 썩 기분이 좋았다. 열 살 된 외손자가 두 번째 책을 받더니 할아버지 책이 또 왔다며 반가워하더니 틈틈이 그 책을 읽으며 재미있어한다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엉뚱하게 번역한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대부분 인칭대명사 적용에서 인공지능이 혼란스러워 한다. 한국어에서는 주어가 생략될 때가 많은데, 영문에서는 인칭대명사 없이는 문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문으로 번역하며 빠진 인칭대명사를 적당히 적용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혼란스러워해서 그런 문제가 자주 생기니 인공지능을 통한 번역에 유의하여야 하겠다.
(2024년 1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