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22

이 좋은 아침에

아내가 15일간의 일정으로 독일 여행을 떠났다. 늘 옆에 있던 사람이 떠나니 낮에는 할 일이 없고, 밤에는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그렇게 해서 시간이 넘쳐나니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2005년의 교통사고 이후에 쓴 글들 중 사고와 관련된 글을 모아서“이 좋은 아침에” 라는 제목으로 책을 묶고,한국어 독해력이 떨어지는 우리 딸네 가족과 독일에 사는 외 조카딸 가족에 읽히기 위해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영문으로 번역한 글을 모아서“Good Morning”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묶었다.그동안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그리고 신문에 같은 내용이 게재되었기에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미 읽은 것이므로이 두 권의 책은 오직 우리 가족들에게만 배부될 것이지만,아내의 부재 중에 이..

교통사고 이후 2024.10.17

혼자 식사하기

아내가 독일 여행을 떠나니 혼자 식사하는 게 참 힘들다.미리 준비해 둔 식재료를 냉동실에서 꺼내서 익히고 끓이기만 하면 되지만,그러한 준비 과정도 참 귀찮아서 밑반찬이야 여러 가지 있지만,식탁에는 언제나 김치 한 가지만 올리곤 한다.그래도 그 시간에 캐나다에 사는 큰딸이 다섯 살 된 막내 외손녀와화상 통화를 하게 해 주어서 적적함을 덜어 준다.대화는 늘 비슷하다.“뭘 먹고 있니?”“치즈와 비스킷과 ….을 먹고 있어요.”“오늘 뭐 하고 지냈니?”“아드리아나와 같이 놀았는데, 참 재미있었어요.”“할머니는 독일 가셨다면서요?”“그래, 곧 돌아오실거야.”달리 할 말이 없으면 서로 밥 먹는 걸 구경하며 이유 없이 웃기도 한다.그렇게라도 혼자 밥먹는 아비의 적적함을 덜어주려는 큰딸의 배려가 고맙다.그런데 작은딸은 ..

가족 이야기 2024.10.16

이 좋은 아침에

아내의 독일 여행 중에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작은 집이지만, 혼자서 보내려니 집이 참 썰렁했고, 한밤중에는 심란했다. 하루 서너 시간 밖에 못 자는 일이 열흘 이상 계속되니 참 견디기 어려웠다. 어저께 아침 산책길에 만난 대만 태생 할머니 추 메이에게 그런 사정을 말했더니 불면에 직방으로 듣는 약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염치불구하고 좀 나누어 달라고 했더니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 집으로 작은 통에 든 약을 가져다주었다. “약통에 붙은 레이블을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습관성 없음. 술 마시고 복용하지 말 것. 2주 이상 복용 삼가. 어린아이와 임산부는 사용 금지” 대강 그런 상투적인 주의사항이 적혀 있었다. 70대 할아버지가 임신했을 리가 없고, 술이야 바로 끊으면 되니까 저녁일곱 시 반에 바로 잠자리에..

가족 이야기 2024.10.11

한밤에 찾아온 손님

밤늦게 예고 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한밤중인 한시 조금 지나 찾아와서 해가 뜨고도 한참 지날 때까지 떠나지 않아 밤새도록 한숨도 자질 못 했다. 그 손님이란 60년 가까이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지내다가 사고로 떠나 보낸 내 왼쪽 다리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손님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해서 찾아오면 “너 어디 있었니?”라며 반가워하며 그가 갖고 온 ‘아픔’이라는 선물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왼쪽 다리의 남은 부분을 들어 올리면 다시 찾아온 손님의 묵직한 무게도 느낄 수 있고, 통증이라는 신호로 몸 전체에 존재감을 표하는 게 신기했다. 그 신호란 게 환상통이다. 그렇게 환상통을 벗하며 지낸 게 10년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자주 찾아오더니 시간이 ..

교통사고 이후 2024.10.03

큰일을 해냈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가 절단되고 다른 하나는 망가진 나는 의족을 끼지 않으면 설 수가 없고, 쌍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서 있을 때는 언제나 양손으로 지팡이를 짚어야 하므로 일상적인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진공청소기를 끌고 청소하는 건 꿈도 못 꾸지만, 다행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에는 문제가 없어서 마늘 까기, 파 썰기, 양파 갈기, 감자 껍질 벗기기 같은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를 돕는다.  어쩌다 아내가 저녁에 모임이 있어서 서둘러 성당에 가면 부엌 싱크대에 기대서 설거지도 하고, 가끔은 아내가 멀리하지만, 나는 즐기는 국수를 끓이거나 간단한 요리를 직접 하기도 한다. 물론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하고, 뜨거운 기름이나 물이 튀어서 얼결에 넘어지지..

교통사고 이후 2024.10.03

잃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것

비비안 톰슨이라는 여자는 여섯 살에 소아 당뇨 진단을 받고 순환기 장애로 고생하다가 40대 초반에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한 이후로 의족을 착용하고 지내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심경을 적은 글 일부를 번역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의족을 착용하니 새장 밖으로 나온 새가 된 듯했다. 두 다리로 서서 걷는다는 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말이다.   의족을 끼고 걷기를 배웠지만, 모든 걸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전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 이전처럼 손과 무릎을 사용해서 정원 가꾸기를 할 수 없었고, 약간 비탈진 뜰을 마음대로 거닐 수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족부터 끼어야 했고, 하루..

교통사고 이후 2024.10.03

에릭 가족의 고난

구약성경 욥기를 보면 하느님과의 내기에 따라 사탄은 도둑들이 욥의 재산을 약탈하게 하거나 불태우게 하고, 하인들을 빼앗거나 죽이게 하였고 또 천재지변으로 아들 일곱, 딸 셋인 그의 자식을 모두 잃게 한다. 그럴 때마다 심부름꾼이 그에게 달려와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라며 흉보를 전한다. 그렇게 네 번에 걸쳐서 욥은 가진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게 바로 하늘이 무너지는 게 아니고 뭘까?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내 가족도 하늘이 무너지는 체험을 한 번 했다. 못난 가장이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가 그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진 때였을 거다.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 ..

교통사고 이후 2024.10.03

안락사에 대하여

영화 Me Before You를 보고   ‘그대 앞의 나(Me Before You)’라는 영화는 흔한 로맨스 영화 중 하나이지만 안락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년간 일해온 카페가 문을 닫으며 하루아침에 실직한 루이자 클라크(26세), 어려운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전신 마비 장애인을 간병하는 일에 지원하게 된다. 그녀가 돌봐야 하는 윌 트레이너(31세)는 부유한 상류층 출신에 인물까지 잘생겼고 만능 스포츠맨에 유능한 사업가였는데,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된 후 까칠한 성격으로 변한 인물이었다.  7년 동안 사귀며 결혼을 약속했던 매력적인 애인이 사고가 난 후에 떠나고, 유능하고 활동적이며 자존심이 강한 윌은 앞으로도 평생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아침마다 해가 뜨고 저녁마다 해가 진다

오늘이 바로 내 교통사고 14 주년 기념일이다. 좀 별난 기념일이지만, 해마다 이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아직 살아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사고 이후 내가 일어설 때까지 기도해 주고, 도움을 준 은인들을 다시 기억한다.  사고가 나고 두 달 후에 의식을 되찾았는데, 그 두 달 동안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이 펼쳐지고, 거기서 먼저 간 분들을 만나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다가 내키지 않았지만, 발길을 돌려서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어디선가 여러 번 들어 본 그런 임사 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했더라면 ‘김형기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써서 돈도 좀 벌었을 텐데 아쉽다. 의식을 잃은 상태라고 하지만, 아주 희미하게 의식은 남아 있었는지 막막하고, 답답하고, 혼란..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아직도 낯선 용어, PTSD

요즈음 한국에서 탈북 병사 오청성과 그를 치료하는 이국종 교수 그리고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교수와 석 선장은 탈북 병사의 치료와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 관해 말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용어인 PTSD란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정신적인 외상을 받은 후에 나타나는 질환으로서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나도 교통사고 후에 이 질환으로 고생했고 사실은 지금도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사고 후 두 달 만에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자 망가진 육신도 고통스러웠지만,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사고 당시의 기억 때문에 견디기가 어려웠다. 차에 치..

교통사고 이후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