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22

삼킴 장애에 대하여

삼킴장애란 음식을 삼키기가 어려운 증상이다. 삼킴장애가 있으면 입에서부터 위까지 음식물이 매우 천천히 내려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여 목에 막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뇌졸중 환자나 50세 이상 노인 또는 큰 수술을 받고 목 근육이 약해진 사람에게 주로 발생한다. 삼킴장애가 나타나면 약화된 목 근육 때문에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갈 수 있는 등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분의 장례미사에 참례하고 그분이 뇌졸중 후에 생긴 삼킴장애 때문에 18년 동안이나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분이 삼킴장애로 고생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고생하신 건 몰랐다. 미각은 그대로인데 삼킬 수가 없어서 음식을 입으로 씹은 후 깔때기에 뱉어서 튜브를 통해 위장에 넣었다니 그 고초..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먹고 마시고 말할 수만 있어도

오래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는 가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입원 중에 일종의 사고로 숨이 넘어가서 스스로 숨을 쉴 수 없게 되자 급히 후골(喉骨=Adam’s apple) 바로 밑을 절개하여 인공호흡기를 허파 깊숙이 밀어 넣는 과정에서 성대가 망가지고 삼키는 기능도 잃게 되어 반년 가까이 말 한마디 못 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하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어찌나 힘들었던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곤 했다. 반년쯤 지나서 성대 복원 수술을 받고 목소리를 되찾기는 했지만, 늘 쉰듯한 목소리가 난다. 잠을 설쳤거나 피곤한 날에는 그 목소리나마 잘 나오지 않아서 그럴 때는 꼭 필요하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말주변이 없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말을 아끼니 점점 말..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는 속담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것 같다. 이와 비슷한 고사성어를 찾아보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측이심(如廁二心)’이라는 말이 있는데 ‘廁’이 바로 뒷간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이니 우리 속담과 같은 뜻이다. 또 하나는 널리 알려진 ‘토사구팽(兔死狗烹)’이라는 말이 있는데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른다. ‘Danger past, God forgotten.’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는데, 의미는 ‘위험이 지나가면 하느님은 잊힌다’로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표현과 딱..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뒤늦게 운동권에 합류하다

운동이라는 단어에는 다음 세 가지 의미가 있다.(1) 건강의 유지나 증진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 (예, 실내 운동)(2) 사회 안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조직적인 활동 (예, 모금 운동)(3) 물체의 움직임 (예, 운동의 법칙) 운동권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이렇다. “운동권(運動圈)이란, 대한민국에서 사회 개혁, 변혁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원래는 학생 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으나, 진보 진영까지 포괄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운동이라는 단어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처럼 운동권이라는 단어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처럼 조직적인 활동’이라는 운동만 운동권이라는 단어를 독점하는 게 나는 불만이다.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며 위에 든 세 가지 운동 중..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당신 참 오래 살았네

"한국에서는 ‘사랑의 방정식’이란 제목으로 상영된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이란 영화는 루게릭병으로 장애를 안고 산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전기 영화다. 영화에서 그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기 얼마 전 스티븐이 아내 제인과 상의도 없이 간호사 엘레인과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정해 버리자 그러지 않아도 더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느끼던 제인은 차갑게 내뱉었다.  “How many years?” (오래전 의사들이) “당신 몇 년이나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지?”“They said two.” “그들은 2년이라고 했지”“You’ve had so many.” “(그러고 보니) 당신 참 오래 살았네.”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아내가 “당신 참 오래 ..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

며칠 전에 집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당뇨 합병증이 심해서 얼마 전에 왼쪽 다리를 절단한 친구 문병을 위해서였다. 눈물이 흔하고 마음이 여린 그 친구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뜻밖에 평온한 표정이어서 다행스러웠다. 무릎 아래쪽이 절단된 그를 보니 한쪽 다리가 그보다 더 많이 잘린 나지만 섬뜩했다. 그래서였는지 다리가 절단된 후 내가 오랫동안 겪은 고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걸을 때까지 나이 일흔이 다 된 그가 거쳐야 할 힘든 과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남아 있는 무릎 아랫부분이 충분히 길어서 의족을 끼고 재활 훈련을 받으면 정상적인 다리 기능의 80~90%는 회복할 수 있을 거니 그만해도 그게 어디냐고 위로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러지 ..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우리가 나쁜 소식(bad news)이라고 하는 건, 그것이 골치 아픈 일이거나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의미이고, 좋은 소식(good news)이라고 하는 건, 그것이 유익하거나 도움이 될 거라는 의미가 있다. 미국인들은 나쁜 소식을 전할 때 “나쁜 소식은 ~이고, 좋은 소식은 ~입니다.”라고 말하거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걸 먼저 듣겠소?”라고 묻는 걸 자주 본다. 나쁜 소식이더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자는 낙관적인 사고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돌려서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말장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런 표현이 일상에서 널리 사용되어 이에 관한 유머도 수없이 많은데, 몇 가지만 골라서 아래에 소개한다.산부인과 의사와 분만하러 온 임산부의 대화 의사: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나는 날고 싶다

영화 ’Walk, Ride, Rodeo를 보고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Walk, Ride, Rodeo’(걷고, 말 타고 경주하기)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교통사고 이후 지금까지의 내 삶이 오버랩되어 목이 메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앰벌리 스나이더(Amberly Snyder)’는 세 살부터 말을 탔고, 일곱 살부터 경주에 출전하여 열여덟 살에는 전국 규모 대회에서 우승했다. 열아홉 살에 혼자서 트럭을 운전하여 유타주에서 콜로라도 주로 여행하는 도중에 교통사고로 허리 아래가 마비되었다. 여행 도중 와이오밍 주를 지나며 안전벨트를 풀고 옆에 놓인 지도를 보려고 하다가 운전 부주의로 차가 도로를 벗어나 경사로에서 일곱 번이나 구르는 사고를 내게 되었는데 몸이 차량 밖으로 튀어나와 길 가 울타리의..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구급차 안에서

한국의 신문 기사를 보면 ‘모세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이따금 볼 수 있다. 구급차가 지나가는데 길거리의 차들이 모두 양쪽 갓길로 비켜줘서 구급차가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는 보도를 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 당연히 그리 해야 하는 일인데 기적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한국에는 구급차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차들이 많은가 보다.  미국에서는 구급차의 경광등이 멀리서 보이거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구급차 진행 방향 양쪽의 차들이 모두 일제히 길을 비켜 준다. 그게 미담이 아니고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니 모세의 기적이란 표현이라기보다는 밀물이나 썰물 정도로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같다. “하느님, 생사의 갈림길에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인간들에게도 구급차 탈 일이 일어나게 해 주소서”라고 ..

교통사고 이후 2024.10.02

고통 없이 걷게 되지는 않더라

한쪽 다리에 의족을 낀 나는 평상시에는 양팔에 크러치(목발)를 짚고 걷지만, 때로는 급한 마음에 몇 발자국 정도는 크러치 없이 걸을 때가 있다. 크러치 없이 펭귄 걸음으로 허둥대며 걷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한마디씩 한다. “아니, 크러치 없이 잘 걷네요.” 별것도 아닌 일에 놀라는 사람이 우스워서 나는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한다. “평지에서는 크러치 없이도 걸을 수 있어요. 안전하게 빨리 걸으려고 크러치를 쓰는 겁니다.” 예전에 체육관에서 트레이너와 함께 크러치 없이 중간에 쉬지도 않고 100m 트랙을 여덟 바퀴나 걸은 적이 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 눈치다.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는 절단되고 오른쪽 다리의 뼈는 여덟 군데나 골절되었다가 여러 달이 지나서 그럭저럭 아문 ..

교통사고 이후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