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뒤늦게 운동권에 합류하다

삼척감자 2024. 10. 2. 00:53

운동이라는 단어에는 다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1) 건강의 유지나 증진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 (, 실내 운동)

(2) 사회 안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조직적인 활동 (, 모금 운동)

(3) 물체의 움직임 (, 운동의 법칙)

 

운동권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이렇다. “운동권(運動圈)이란대한민국에서 사회 개혁, 변혁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원래는 학생 운동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으나, 진보 진영까지 포괄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운동이라는 단어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처럼 운동권이라는 단어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처럼 조직적인 활동이라는 운동만 운동권이라는 단어를 독점하는 게 나는 불만이다.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며 위에 든 세 가지 운동 중에서 전자(電子)라는 물체의 움직임을 공부했는데 전자의 운동권은 전장(電場)이라고 부른다.

   그 시절에는 먹고 사는데 바빠서 공부할 시간도 부족해서 학생 운동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런 활동을 하는 운동권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예나 지금이나 공학도는 대개 그런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편이다.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이 내 생각에는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운동이고 그런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운동권이라 불러야 마땅할 텐데, 운동권이라는 명칭을 왜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독점할까?

 

예전에는 누가 나 같은 약골은 꼭 운동이라는 걸 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충고하면, 건강을 위한 운동은 숨쉬기 운동으로 충분하다고 우겼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 운동량은 충분하고, 숨이 끊어지지 않으면 살 수는 있으니 숨만 쉬고 있으면 생명 유지는 되는 게 아니냐고 억지를 부렸지만, 사실은 운동하기 싫은 게으름뱅이의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어쩔 수 없이 운동권에 합류했다. 뒤늦게 정치 이념이 바뀌어서가 아니고 생존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에 따라 체육관에 나가고 아파트 복도를 열심히 걸으며 운동이라는 걸 하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는 운동권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교통사고로 잃은 다리에 의족을 끼고 쌍지팡이를 짚고 생활해 보니 걷는 게 힘들어서 거의 온종일 의자에 앉아서 지내게 되었다. 뺑덕어멈 같은 아내가 그렇게 지내서는 안 된다. 하나 남은 다리도 자꾸 써야 퇴화하지 않는다. 무조건 빡세게 운동해서 부족한 운동량을 늘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건강 유지도 못 하고 머지않아 걷지 못 해서 다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라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운동, 운동 그리고 열동(熱動)”을 강조하며 협박하는 게 참 듣기 싫었지만, 그 말이 맞는 말이기도 하고 의사라는 권위자도 같은 말을 하기에 마지못해 운동이란 걸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아파트 복도를 왕복하고 저녁마다 아파트 체육관에서 운동했다. 아내라는 이름의 독재자가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Fitness & Wellness Center(체육관)’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여러 해째 다니고 있다. 매달 적지 않은 돈이 회비로 나가고 있지만, 탈퇴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 가입비를 되돌려 줄 수 없다는 회칙 때문에 들인 밑천이 아깝기도 하지만, 독재자의 허락을 받기가 불가능해서 그렇다. 그리하여 매일 체육관으로 출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운동권 동지들을 관찰하면 몇 가지 부류가 있다. 신이 내린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인간의 몸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피조물인 나의 몸매도 물론 신이 내리기는 했겠지만, 내 몸매에는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가 빠진다. 살을 빼겠다고 뒤늦게 운동에 힘쓰는 중년 남녀들을 보면 육중한 몸매에 접히는 뱃살이 이미 때가 늦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이 드신 분들도 적지 않은데 이분들이 사실은 제일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 같다.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사는 그런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장애가 있는데도 천재지변이 없으면 체육관에 빠짐없이 출근하는 나도 많은 운동권 동지의 주목을 받는다. 그들에게서 많이 듣는 말이 당신 참 대단해. (You are doing good!”), “당신, 결석도 안 하는군. (Wow, you come here everyday)”이다. 그런데 오늘 어떤 할머니에게 생각지도 않은 찬사를 들었다. 어떤 찬사였냐고? “You keep me coming back.(당신 생각하면 안 올 수가 없어)”였다. 가끔은 운동하기 싫어서 체육관에 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장애인인데도 열심히 출근하는 내가 생각나면 안 올 수가 없더라는 얘기를 들으니 참 뿌듯했다.

 

(2017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