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사랑의 방정식’이란 제목으로 상영된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이란 영화는 루게릭병으로 장애를 안고 산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전기 영화다. 영화에서 그의 결혼이 파경에 이르기 얼마 전 스티븐이 아내 제인과 상의도 없이 간호사 엘레인과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정해 버리자 그러지 않아도 더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느끼던 제인은 차갑게 내뱉었다.
“How many years?” (오래전 의사들이) “당신 몇 년이나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지?”
“They said two.” “그들은 2년이라고 했지”
“You’ve had so many.” “(그러고 보니) 당신 참 오래 살았네.”
남편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아내가 “당신 참 오래 살았네.”라고 말했다면 그건 결코 칭찬이 아니고 오랫동안 지겨웠다는 표현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대사를 듣고 그들의 결혼이 오래가지 못할 걸 예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년 후 그들은 이혼하여 스티븐은 엘레인과 결혼하고, 제인은 오랫동안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오르간 연주자 조너선과 결혼했다.
이 영화 개봉에 때맞춰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븐의 전처는 “그가 물리학자로서 명성을 얻은 뒤로는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정작 그에게 나와 아이들은 뒷전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며칠 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그에게 죽음이란 “컴퓨터의 전원이 꺼진 것과 같다.”는 그의 말대로 허망한 것일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그는 연구 업적으로 얼마간의 명예를 얻었을지 몰라도 가족의 존경을 잃은 그의 생애는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며칠 전에 칠순을 맞았다. 교통사고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퇴원한 후 두어 해 동안은 아무래도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하루하루를 간절한 마음으로 보냈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예로부터 드물다는 70이라는 나이에 이르니 기쁜 마음이 앞서서 “그러고 보니 나 참 오래 살았네.”라고 스스로 대견 스러워했다. 시원치 않은 몸으로 고희에 이른 건 적절한 운동과 지나치지 않은 섭생을 하도록 한 아내라는 이름의 잔소리꾼 덕이기도 하지만, 소중한 가족과 함께 오래 있고 싶은 소망을 주님이 들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딸들도 아비가 건강에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내는 걸 다행스러워하니 나는 최소한 스티븐 호킹보다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노라고 자위해 본다.
며칠 전에 “지구: 경이로운 하루(Earth: One Amazing Day)” 라는 기록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동물 중에서도 하루살이의 일생이 참 애잔하고 경이로웠다. 거기에 나오는 해설을 몇 구절 골라서 번역해 옮겨본다.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살지 못한답니다. 그나마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도 못 살고 잡아 먹히지요. 강바닥에서 3년 동안 유충으로 지내다가 수백만 마리가 한꺼번에 성충으로 나타나 장관을 이루지요. 하루살이는 먹지 못합니다. 입이 없으니까요. 그들은 성충이 되자마자 눈부신 짝짓기의 군무를 보여줍니다. 지구에서 지내는 동식물의 나날은 놀랍지만, 하루살이의 하루는 정말 경이롭답니다. 밤이 지나기 전에 그들은 짝짓기하고, 알을 낳고는 죽습니다. 미래는 다음 세대에 맡기는 거죠. 그들이 어른으로 보내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도 고작 몇 시간에 불과하답니다.”
하루살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 단 몇 시간밖에 살지 못하지만, 종족보존이라는 거룩한 사명을 마치고 바로 죽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실로 장엄하다. 누가 그들의 생이 짧다고 비웃을 수 있을까? 반면에 오래 살았어도 인간답지 못하게 산 사람의 생이 하루살이보다 더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8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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