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는 속담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것 같다. 이와 비슷한 고사성어를 찾아보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여측이심(如廁二心)’이라는 말이 있는데 ‘廁’이 바로 뒷간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이니 우리 속담과 같은 뜻이다. 또 하나는 널리 알려진 ‘토사구팽(兔死狗烹)’이라는 말이 있는데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른다.
‘Danger past, God forgotten.’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는데, 의미는 ‘위험이 지나가면 하느님은 잊힌다’로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표현과 딱 들어맞는 영어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찾아보며 중국이나 한국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 성당에서 점심 먹는 자리에서 어떤 분이 나에게 물었다.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저세상에 갈 뻔했다는데 다시 살아나서 사는 삶이 행복과 감사로 충만하지 않으냐?’고. 사고를 당하고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을 가끔 만난다. 그럴 때마다 대답할 말을 찾느라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처음에야 그랬지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확신에 찬 신앙 체험담을 듣게 되려니 기대했던 분들은 그런 대답을 들으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생사를 오갈 때는 하느님께 제발 나 좀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 비록 다리 하나를 잃었지만 오랜 입원을 끝내고 퇴원했을 때는 다시 살아난 기쁨으로 주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그리고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제법 오랫동안 주님의 말씀도 열심히 묵상하고, 기도도 비교적 열심히 바쳤다. 죽을 때까지 계속 그런 마음으로 지내고, 마음속 깊이 다짐한 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아마도 사후에 성인 반열에 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살아난 지 십여 년 세월이 흘렀어도 장애에 적응이 되지 않아 육신이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힘들어지니 마음마저 지쳐버린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장애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고, 세월이 흐를수록 육신이 더 불편해질 거라 생각하면 절망감마저 느낄 정도다. 그래서 불편한 몸과 나이를 핑계 삼아 조금씩 하던 봉사활동도 거의 손 놓아 버리고, 신앙생활마저 점점 게을리하게 되었다.
살아난 걸 다행으로 여기던 내가 잃은 것을 점점 더 아쉬워하게 되고, 장애가 된 몸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주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는 속담 그대로이고, ‘Danger past, God forgotten.’이라는 서양 속담이 내 경우에 딱 맞는다. 하느님이 나를 보시고는, “아니, 기껏 살려 줬더니 인제 와서 나를 팽 시켜!”라고 말씀하시며 배신감을 느끼실 것이다.
정채봉 시인의 시 ‘첫 마음’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
(…)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이 시의 내용처럼 다시 살아나서 퇴원했을 때의 그 마음으로 평생 한결같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의지로는 그렇게 하기 어려우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기도를 바랄 뿐이다.
(2018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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