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킴장애란 음식을 삼키기가 어려운 증상이다. 삼킴장애가 있으면 입에서부터 위까지 음식물이 매우 천천히 내려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여 목에 막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뇌졸중 환자나 50세 이상 노인 또는 큰 수술을 받고 목 근육이 약해진 사람에게 주로 발생한다. 삼킴장애가 나타나면 약화된 목 근육 때문에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갈 수 있는 등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된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분의 장례미사에 참례하고 그분이 뇌졸중 후에 생긴 삼킴장애 때문에 18년 동안이나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분이 삼킴장애로 고생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고생하신 건 몰랐다. 미각은 그대로인데 삼킬 수가 없어서 음식을 입으로 씹은 후 깔때기에 뱉어서 튜브를 통해 위장에 넣었다니 그 고초가 어떠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런 모습을 가까운 가족에게도 보여줄 수 없어서 늘 혼자서 식사했다니 그분의 삶은 참 외로웠을 것 같다. 오래전 그분 댁을 방문했을 때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권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마시지 않던 게 생각났다.
나도 교통사고 후 반년 동안 삼킴 장애로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 후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해 인공호흡기를 폐에 연결하기 위해 급히 기관지를 절개하고 기도삽관(氣道揷管)한 이후에 삼키는 근육과 성대에 문제가 생겨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말 한마디 못하게 된 것이다. 없는 기운을 짜내어서 공책에 글을 써서 소통하기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먹고 마실 수 없어서 위장에 연결된 급식 튜브로 유동식을 공급받아 연명하는 게 끔찍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야 할 지, 아니면 삼키는 근육이 회복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절망했다. 칼릴 지브란의 책 ‘예언자’ 중에서 ‘먹고 마심에 대하여‘ 라는 제목의 글에 나오는 “그대가 대지의 향기로 살아갈 수 있으며, 식물처럼 공기와 빛에 의지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라는 대목이 저절로 떠올랐다. 인간이 식물처럼 먹고 마시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런 고통을 겪지 않을 텐데.
기력이 차츰 회복되자 입원해 있던 재활원에서 거의 매일 삼킴장애 회복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은 턱밑에 전극을 부착하여 삼키는 근육에 자극을 주는 동안 물리치료사의 지시에 따라 실시하는 입술운동, 혀 운동 그리고 호흡운동이었다. 모두가 단조로운 반복 운동이어서 참 지루했다. 그나마 물리치료사가 날씬하고 젊은 아일랜드계 미녀인 데다가 상냥하고 친절해서 지겨운 훈련도 견딜만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코딱지만한 얼음 조각, 눈꼽만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무거운 특수한 물을 병아리 오줌만큼 차례대로 먹고 마시게 하고는 그것들이 목을 넘어가는 걸 엑스레이 동영상으로 찍은 다음 나중에 다시 돌려보며 자세히 검토했다. 두 달 정도 매번 “검사에 통과하지 못했다.”라는 물리치료사의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석 달 정도 훈련을 받은 다음에 실시한 검사에서 “축하합니다. 검사에 통과했습 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삼킴 장애 회복 훈련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설사 삼키는 데 문제가 있어도 다른 방식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으니 당장 생명 유지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본인 외에는 그 고통을 모르니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훈련에 드는 비용은 물론 쇠약한 환자에게 거의 매일 교통편을 제공하고 시간도 할애해야 하므로 가족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 중 한 사람이 비인두암이라는 희소 암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후각과 미각을 상실하고 음식을 먹는 것도 고통스러워한다는 말을 들으니 참 마음이 아프다. 하느님은 어째서 그토록 선한 사람에게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아침에 칼릴 지브란의 ‘먹고 마심에 대하여’라는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니 그의 글이 한가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먹고 마실 수 없거나 먹고 마시는 게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그런 고상한 글이 가슴에 와닿기나 할까?
(2019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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