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바로 내 교통사고 14 주년 기념일이다. 좀 별난 기념일이지만, 해마다 이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아직 살아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사고 이후 내가 일어설 때까지 기도해 주고, 도움을 준 은인들을 다시 기억한다.
사고가 나고 두 달 후에 의식을 되찾았는데, 그 두 달 동안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찬란하게 빛나는 천국이 펼쳐지고, 거기서 먼저 간 분들을 만나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다가 내키지 않았지만, 발길을 돌려서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어디선가 여러 번 들어 본 그런 임사 체험(near-death experience)을 했더라면 ‘김형기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써서 돈도 좀 벌었을 텐데 아쉽다. 의식을 잃은 상태라고 하지만, 아주 희미하게 의식은 남아 있었는지 막막하고,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두런두런 말하는 것과 나를 위해서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기억이라는 게 생각날 듯 말 듯한 희미한 꿈같은 거고 순서도 뒤죽박죽이어서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마도 깨어난 후에 재구성한 기억일 테니 그것 마저도 그리 믿을만 하지는 않다.
사고 후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 하느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 4, 7-8) 라는 성경 구절과 같이 많은 이들에게서 받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므로 나는 그분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느님을 만난 셈이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1야고 1, 2)라는 성경 구절과 같이 시련을 겪는 동안에 그걸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겼어야 하는데 의식을 되찾은 다음 정신적인 혼돈과 육신의 고통으로 마치 지옥 한복판에 떨어진 것처럼 느꼈으니 내 신앙심이란 게 고작 그런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걸 이겨내고 내가 만든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포기할 건 포기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며 희망의 씨앗을 싹틔우고 키운 덕분이었다.
비록 다리 하나를 잃고 나서 지금까지 14년 동안 장애인으로 살아왔지만, 다시 살아나서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며 산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제부터 더는 놀랄 일 없이 매일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나날이 계속되면 행복한 거지 이 나이에 무엇을 더 바랄까?
‘돈 까밀로와 뻬뽀네’ 라는 소설에 나오는 다음 구절처럼 예수님께서도 평범한 일상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강조하신 듯싶다.
“예수께서 미소지으며 대답하셨다. ‘아침마다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진다. 밤마다 네 머리 위로 수십억 개의 별이 돌고 있지 않으냐. 초원에는 풀이 돋아서 세월의 순환에 따라 제 걸음을 재촉한다.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존재하시고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내가 보기엔 많고도 많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구나. 돈 까밀로야! 이런 일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더냐.’”
이제부터는 매일 아침마다 해가 뜨고 저녁마다 해가 지는 걸 보고만 살아도 행복하게 여기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한 번 은인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2019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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