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욥기를 보면 하느님과의 내기에 따라 사탄은 도둑들이 욥의 재산을 약탈하게 하거나 불태우게 하고, 하인들을 빼앗거나 죽이게 하였고 또 천재지변으로 아들 일곱, 딸 셋인 그의 자식을 모두 잃게 한다. 그럴 때마다 심부름꾼이 그에게 달려와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라며 흉보를 전한다. 그렇게 네 번에 걸쳐서 욥은 가진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게 바로 하늘이 무너지는 게 아니고 뭘까?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내 가족도 하늘이 무너지는 체험을 한 번 했다. 못난 가장이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가 그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진 때였을 거다.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 끝에 되살아 나서 사고 후 석 달 만에 병원에서 퇴원한 그 날로 다시 재활원에 입원하여 다시 석 달을 보냈다. 재활원이란 사고나 질병으로 팔다리를 절단하였거나 운동 기능을 잃어 신체 기능에 문제가 생겼거나 정신적 후유증 등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물리치료를 통해 신체 기능을 회복하게 하여 일상에 복귀하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재활 훈련을 받으러 강당처럼 큰 방에 내려가 보면 주위에는 온통 팔다리가 절단된 환자나 뇌졸중 등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세상에 장애인이 이렇게 많았다니.”라고 신기해했지만, 장애인만 모아 놓았으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장애인인 것처럼 착각할 수밖에.
재활원 입원 초기에는 뇌가 손상된 중환자 취급을 받아 일반 병실에서 격리된 특별 병동에 머물렀다. 에릭 가족을 만난 건 그 당시였다. 2인 1실 병실인 내 방에 어느 날 키 큰 젊은이가 입원했는데, 이마 한쪽이 움푹 들어가고 몸 전체가 마비되어 바로 앉을 수조차 없어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특수 휠체어에 누워서 이동했다. 소년티를 막 벗은 앳된 얼굴을 한 그가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아내가 그의 부모에게 물었더니, 숲에서 스쿠터를 타고 달리다가 나무에 세게 부딪혔는데 헬멧을 쓰지 않아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수술을 받고 목숨은 구했으나 운동기능을 잃었다고 하더란다.
세 아들 중에서 막내인 그가 입원하자 그의 부모는 온종일 병원에 머무르며 그를 돌보았다. 알아듣지도 못할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그에게 끊임없이 간단한 질문을 퍼부으며 아들의 기억을 온전히 되살리려고 애썼다. “내가 네 아빠지? Yes or No?” 이를테면 아들에게 이런 정도의 질문을 끊임없이 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의 두 형도 거의 매일 병실에 와서 동생 얼굴도 닦아주고 면도도 해주는 게 형제간의 우애가 참 좋아 보였다.
에릭이 입원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아내와 함께 휴대용 DVD Player로 ‘춘향뎐’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 도령이 춘향이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판소리가 흘러나오는데 간호사가 와서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소리를 작게 낮췄는데도 조금 있다가 다시 와서 에릭을 찾아온 손님이 많으니 꺼 줄 수 있겠느냐고 다시 요청했다. 병상 사이의 커튼을 조금 열고 들여다보았더니 열 명 가까이 되는 손님이 말없이 서 있었는데 분위기가 침통해 보였다. 얼마 후 에릭 가족과 그들은 모두 병실을 떠났는데 소지품을 모두 두고 갔기에 퇴원한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지만, 간호사들은 환자의 비밀을 철저히 지키도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 그들에게서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오후 늦게야 돌아온 에릭의 부모 말로는 비가 내리던 그 전날 밤에 그의 둘째 형이 에릭의 차를 몰고 나갔다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다른 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사고가 나서 바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들 가족에게는 하늘이 두 번째로 무너지는 사건이었을 거다.
얼마 후 체력이 조금 회복되자 나는 일반 병실로 옮겼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에릭이 뒤따라 내 병상 옆으로 옮겨 왔다. 그의 증상은 조금 호전된 듯했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고, 그의 부모는 더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늘 눈꺼풀이 부어올라 있었다. 며칠 사이에 하늘이 두 번씩이나 무너졌으니 어떻게 눈물 없이 지낼 수 있었을까?
내가 재활원에서 퇴원하고 몇 달 후에 다시 찾아보았더니 에릭의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 말로는 별다른 차도가 없어서 집 근처의 재활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제 세월이 제법 흘렀으니 그 청년도 이제 나이가 서른을 넘겼을 텐데, 몸은 회복되었는지, 결혼은 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의 가족 모두 욥기에서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 (욥기 8, 7)라고 한 빌닷의 말대로 지난 고통을 떨치고 일어나 지금쯤은 모든 것이 잘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2017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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