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톰슨이라는 여자는 여섯 살에 소아 당뇨 진단을 받고 순환기 장애로 고생하다가 40대 초반에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한 이후로 의족을 착용하고 지내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심경을 적은 글 일부를 번역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의족을 착용하니 새장 밖으로 나온 새가 된 듯했다. 두 다리로 서서 걷는다는 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말이다.
의족을 끼고 걷기를 배웠지만, 모든 걸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전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 이전처럼 손과 무릎을 사용해서 정원 가꾸기를 할 수 없었고, 약간 비탈진 뜰을 마음대로 거닐 수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족부터 끼어야 했고, 하루의 마지막 일은 의족을 빼는 거였다.
사람에 따라 의족에 익숙해지는 건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의족을 끼고 살게 된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의지하고,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하늘에 계신 분에게 의지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리고 하느님에게 새로운 삶에 적응하게 해 달라고 청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전의 삶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잃은 다리를 되돌려 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가 전에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한다. 앞으로 삶이 불편하더라도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고 절망에 빠졌다가 인공 다리인 의족을 끼고 걷는 연습을 거쳐서 목발을 짚고서야 걷게 된 나는 비비안의 글을 읽고 공감했다. 의족만 끼면 정상인과 다름없이 걷게 될 거로 생각했던 게 얼마나 허황한 꿈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의족이라는 게 고작해야 휠체어에서 벗어나 평생 느릿느릿 불안하게 걸으며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서는 막연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의족을 끼고 사는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잃은 다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의족과 목발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코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서 사고로 다리나 팔을 절단한 사람은 전체 지체 장애인 중 45%이고 당뇨 등 순환기에 문제가 있어서 지체를 절단한 사람은 54%라고 한다.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무릎에서 절단하기 전에 나는 지체를 절단한 사람은 대부분 사고를 당해서 그렇게 된 줄 알았다. 그래도 나는 다리를 절단하고 10여 년이 흘러서 이제는 장애로 사는 것에 많이 적응되었지만, 작년에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한 J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보기에 안쓰럽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도 새로운 삶에 적응하리라 생각한다.
다리를 잃고 사는 삶이 은혜로 충만할 수가 있을까? 다리 하나를 잃었더라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지만, 다리가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다리 하나를 잃고 살아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하필이면 내가?”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 나에게 그런 경지는 아직도 도달하기에는 까마득하다.
우리 삶에서 ‘잃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손에서 벗어난 돌, 내뱉은 말, 잃어버린 기회, 지나간 시간 그리고 실추된 명예가 그것이라고 한다.
나이 들어서 은퇴하면 넓은 미국 땅을 자동차로 돌아다니며 여행하겠다는 젊었을 적의 꿈은 잃은 다리 때문에 운전할 수 없어서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힘들더라도 두 다리 멀쩡할 때 해야 했는데 이제 와서 지나간 시간과 잃어버린 기회를 탓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리. 그래 봐야 돌이킬 수 없는 것을.
(2019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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