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이후

한밤에 찾아온 손님

삼척감자 2024. 10. 3. 05:34

밤늦게 예고 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한밤중인 한시 조금 지나 찾아와서 해가 뜨고도 한참 지날 때까지 떠나지 않아 밤새도록 한숨도 자질 못 했다. 그 손님이란 60년 가까이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지내다가 사고로 떠나 보낸 내 왼쪽 다리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손님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해서 찾아오면 “너 어디 있었니?라며 반가워하며 그가 갖고 온 ‘아픔’이라는 선물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왼쪽 다리의 남은 부분을 들어 올리면 다시 찾아온 손님의 묵직한 무게도 느낄 수 있고, 통증이라는 신호로 몸 전체에 존재감을 표하는 게 신기했다. 그 신호란 게 환상통이다. 그렇게 환상통을 벗하며 지낸 게 10년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자주 찾아오더니 시간이 지나며 뜸해졌다. 요즈음은 1년에 두어 번 느닷없이 찾아와 반나절 정도 지내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환상통이란 절단된 부위에서 주로 발생하며, 절단 환자는 이 증상으로 고통을 많이 겪는다. 절단 환자 중에서 50%에서 80%가 이 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해당 부위에서 불편한 증상이나 극도의 아픔까지 통증을 느끼거나 더위나 추위, 간지러움, 쓰라림 등을 느낄 수 있다. 없어진 부위에서 고통을 호소하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꾀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입장에서는 이만큼 황당한 것도 없다. 의사들이 기껏 처방하는 진통제는 듣지도 않는다. 때문에 환자는 환장할 노릇이니 환장통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산통(産痛)과 비교되기도 하는 요로결석의 통증은 신선도 못 참는다고 선통(仙痛)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느 지체 절단 환자는 환상통이 요로결석의 통증보다 더 견디기 어렵더라고 했다. 산통이나 선통을 겪어보지 못 한 나로서는 환상통을 이들 통증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칼로 찌르는 듯한 이 통증을 견디기가 매우 힘들다는 얘기밖에 할 수가 없다. 그 통증의 정도도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나 산모만이 체험할 수 있는 거룩한 고통인 산통과 비교할 생각은 감히 없다.

 

밤을 꼬박 새운 날 아침에 성당에 가는 차 안에서 다리에 영혼이란 게 있어서 한 몸을 이루었던 나를 가끔 찾아와 아픔을 호소하는 게 아니겠냐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그 생각을 얘기했더니 아내는 크게 웃으며 그럼 세상을 떠난 다리를 위해 연()미사를 올려야 하겠네.”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신부님이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정신이 나간 거로 생각할까 봐 꾹 눌러 참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이 지은 고전 수필인 조침문(弔針文)을 찾아 읽으며 부끄러웠다. 조침문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미망인이 된 그분이 자녀도 없이 바느질에 마음을 붙여 27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지내오다가, 어느 날 문득 바늘이 부러지자 너무나 애석하여 바늘을 의인화하여 자기의 슬픈 심회를 제문 형식에 맞추어 쓴 수필이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 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니로 시작되는 수필을 읽으니 문득 내가 무척 의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60년 가까이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지내다가 나를 살리기 위해 떨어져 나간 다리가 쓰레기통에 버려져서 아무렇게나 처리되었음을 슬퍼한 적도 없었고, 가끔 환상통으로 찾아오는 그를 원망하기까지 했으니 나는 정말 인정머리가 없는 것 같다.

 

다리를 위한 연미사는 가톨릭 교리에 맞지 않으니 유씨부인을 본받아 조족문(弔足文)이라도 지어 올려서 떠나간 다리를 위로하면 환상통에 시달리지 않게 될까?

“모년 모월 모일에 김모는 두어 자 글로써 족자(足子)에게 고하노라. 인간사 흔한 일이 만나고 헤어짐이라 하나, 내 너와 함께 50여 년을 함께하다가 교통사고라는 날벼락으로 너를 떠나 보냈으니 심회가 남과 다름이라. 안타깝고 슬프다. 내 잠깐 눈물을 거두고 마음을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심회를 총총히 적어 이별에 부치노라.” 애고, 눈물이 앞을 가려 더는 못 쓰겠네.

 

(2017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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