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3 4

한밤에 찾아온 손님

밤늦게 예고 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한밤중인 한시 조금 지나 찾아와서 해가 뜨고도 한참 지날 때까지 떠나지 않아 밤새도록 한숨도 자질 못 했다. 그 손님이란 60년 가까이 나와 한 몸을 이루어 지내다가 사고로 떠나 보낸 내 왼쪽 다리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손님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해서 찾아오면 “너 어디 있었니?”라며 반가워하며 그가 갖고 온 ‘아픔’이라는 선물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왼쪽 다리의 남은 부분을 들어 올리면 다시 찾아온 손님의 묵직한 무게도 느낄 수 있고, 통증이라는 신호로 몸 전체에 존재감을 표하는 게 신기했다. 그 신호란 게 환상통이다. 그렇게 환상통을 벗하며 지낸 게 10년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자주 찾아오더니 시간이 ..

교통사고 이후 2024.10.03

큰일을 해냈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가 절단되고 다른 하나는 망가진 나는 의족을 끼지 않으면 설 수가 없고, 쌍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몸의 균형을 잡을 수가 없다. 서 있을 때는 언제나 양손으로 지팡이를 짚어야 하므로 일상적인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진공청소기를 끌고 청소하는 건 꿈도 못 꾸지만, 다행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에는 문제가 없어서 마늘 까기, 파 썰기, 양파 갈기, 감자 껍질 벗기기 같은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를 돕는다.  어쩌다 아내가 저녁에 모임이 있어서 서둘러 성당에 가면 부엌 싱크대에 기대서 설거지도 하고, 가끔은 아내가 멀리하지만, 나는 즐기는 국수를 끓이거나 간단한 요리를 직접 하기도 한다. 물론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하고, 뜨거운 기름이나 물이 튀어서 얼결에 넘어지지..

교통사고 이후 2024.10.03

잃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것

비비안 톰슨이라는 여자는 여섯 살에 소아 당뇨 진단을 받고 순환기 장애로 고생하다가 40대 초반에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한 이후로 의족을 착용하고 지내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심경을 적은 글 일부를 번역하여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의족을 착용하니 새장 밖으로 나온 새가 된 듯했다. 두 다리로 서서 걷는다는 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겠지만 말이다.   의족을 끼고 걷기를 배웠지만, 모든 걸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전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고, 이전처럼 손과 무릎을 사용해서 정원 가꾸기를 할 수 없었고, 약간 비탈진 뜰을 마음대로 거닐 수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족부터 끼어야 했고, 하루..

교통사고 이후 2024.10.03

에릭 가족의 고난

구약성경 욥기를 보면 하느님과의 내기에 따라 사탄은 도둑들이 욥의 재산을 약탈하게 하거나 불태우게 하고, 하인들을 빼앗거나 죽이게 하였고 또 천재지변으로 아들 일곱, 딸 셋인 그의 자식을 모두 잃게 한다. 그럴 때마다 심부름꾼이 그에게 달려와 “저 혼자만 살아남아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라며 흉보를 전한다. 그렇게 네 번에 걸쳐서 욥은 가진 재산과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게 바로 하늘이 무너지는 게 아니고 뭘까?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씩이나. 내 가족도 하늘이 무너지는 체험을 한 번 했다. 못난 가장이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가 그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진 때였을 거다. 여러 차례에 걸친 수술 ..

교통사고 이후 202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