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계란 껍데기 깨기

삼척감자 2024. 11. 4. 03:52

오늘 아침에 삶은 계란 두 개를 깨며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계란의 어느 부분을 깰까? 별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개 계란의 중간 부분을 식탁에 두들 겨서 껍질을 깐다. 때로는 별다른 생각 없이 계란의 양쪽 끝부분 중 어느 부분이든 생각 없이 식탁에 두들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나처럼 별생각 없이 계란을 잡고 어느 쪽이든 식탁에 두들겨서 껍질을 깔 것이다. 어떻게 깨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여길까? 살 만큼 살아보니 큰 일을 두고 깊이 고민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계란 껍데기 깨기보다 더 자잘한 일을 두고 앙앙불락하느라 마음 편히 보내지 못 한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영국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1726년 작 풍자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릴리퍼트라는 작은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본래 삶은 달걀을 둥근 쪽 방향에서 깨서 먹었지만, 왕자(현 릴리퍼트 국왕의 할아버지)가 달걀 껍데기를 깨다가 손을 다쳤다고 해서 달걀의 넓고 둥근 쪽을 깨던 관습을 하루아침에 금지하고 뾰족한 부분부터 깨어 먹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왕명으로 정했다. 이에 반발한 릴리퍼트 주민들에 의한 반란이 6번 있었고, 반란군들이 이웃 국가인 블레퍼스큐의 도움을 받거나 망명을 가면서 두 국가 간의 전쟁으로 발전한다.

 

왕이 오죽 할 일이 없으면 고작 계란 껍질 벗기는 일로 국가를 분열시키고 전쟁까지 일으킬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조너선 스위프트가 세상을 풍자한 지 300년이 지났어도 그다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잘한 일에 목숨을 걸며 티격태격이고,

정치권은 국가야 망하든 말든, 백성이야 굶든 먹든 관심 없고, 하잘것 없는 정쟁에 사생결단하고 있으며,

국가는 사소한 이익이나 명분에 얽매서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있으니,

걸리버가 지금 세상으로 여행을 와 본다면 300년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은 인간 세상에 놀랄 것 같다.

 

(2024 11 3)

 

'이것저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  (0) 2024.08.17
어둠 속의 빛  (1) 2024.07.15
제논의 역설  (0) 2024.07.06
차 좀 잘 만들지  (0) 2024.06.07
가는 세월  (0) 202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