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68

말보로라는 마을

몇 년 전 뉴저지 주택국을 통해 은퇴 후에 살 집을 알아보고 있던 어느 날 말보로(Marlboro)에 적당한 집이 나왔으니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말보로? 그 동네가 뉴저지주 중부 지역 어디에 있는 것 같은데…..지도로 찾아보니 한인 타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게 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범죄율이 낮고, 공기가 맑고 게다가 바다도 가까운 게 주거 환경으로 나무랄 데 없어 보였다. 오랫동안 뉴저지주 동북부 지역에 살던 나는 뉴저지 중부 지역에 있은 작은 마을인 말보로(Marlboro)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오래전 그 동네에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소문(교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함)을 얼핏 듣고는 말보로 담배가 연상되어 담배 농장과 담배 생산 공장이 그 마을에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다..

미국 생활 2023.12.13

우리 응가 출세했네

정기 검진받으러 오라는 주치의의 연락을 받고 닥터 오피스를 방문했다. 나이 여든이 가까운 분이라서 방문하는 환자는 적고 시간이 남아돌아서인지 방문할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많고 잔소리도 많이 하지만, 우리 부부의 건강을 챙기느라 그러려니 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삐쩍 말라서 한 방울도 아쉬운 내 몸에서 뽑는 피가 아깝기도 하고, 소변 받기가 귀찮아도 군소리 없이 주치의가 시키는 대로 따르지만, 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게 문제다. 접수를 담당하는 미국인 직원에게 물어보면 직접 와서 받아 가라고 무뚝뚝하게 말하고, 의사에게 직접 전화하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 문제 없으니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거라며 짜증스러워한다. 그래서 한인 환자들이 하나둘씩 발걸음을 끊는다고 들었다. 그래도 오랜 경험에서 ..

미국 생활 2023.11.25

청설모와 맞짱을 뜨고 나서

우리 집 주위에서 청설모는 가장 흔히 눈에 띄는 동물이다. 가을이 깊어져 가니 창문을 열면 땅을 파고 도토리를 숨기는 청설모를 거의 언제나 볼 수 있다. 청설모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이리로 몇 걸음 저리로 몇 걸음,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빨리 내달리지만, 몇 걸음 가다가 바로 멈추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별다른 이유 없이 재주 넘기를 하는 걸 보면 보이지 않는 관중을 의식하는 것 같아서 이놈은 자신을 인기 있는 댄서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날개가 없는데도 까마득하게 높은 나무를 타고 거침없이 오르내리거나 나무에서 나무로 재빨리 이동할 때는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문화권에서는 청설모를 악마와 연관 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청설모를 요괴로 여기기도 했고, 서..

미국 생활 2023.09.26

이웃 영감에게 애국심이란

노동절(9월의 첫 월요일) 아침 산책길에서 지그(Zyg) 영감을 만났다. 그는 나와 비슷한 연배라서 만나면 두어 마디 농담도 편안하게 나누곤 한다. “오늘은 휴일이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 “하기야 우리에게는 365일이 휴일이지.” “오늘 무척 더울 거라던데, 시원하게 지내소.” 돌아서며 생각하니 오늘 그가 내게 거수경례하는 걸 잊었다. 아침에 만나면 으레 왼손으로 경례를 붙이기에 오른손에 문제가 있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화단을 손질할 때 보니 멀쩡했다. 애국심을 표할 때는 오른손으로 경례하고, 나 같은 사람에게 친근감을 표할 때는 왼손으로 경례하는, 나름대로 지키는 원칙이 있는 듯하다. 그는 자그마한 화단 가꾸기로 소일하는데, 좁고 길쭉한 화단을 따라가며 열 개도 넘는 작은 성조기를 세워 놓..

미국 생활 2023.09.06

조수석 바닥에 물 고임

1년 반 전에 산 소형 SUV의 조수석 바닥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자동차 고수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니 (1) 비가 내릴 때 선루프에서 배수가 잘 안 되는 경우 (2) 에어컨 증발기에 맺힌 물기를 모아서 배수 처리하는 파이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오늘 딜러에 차를 갖고 갔더니, 부품에 문제가 있다면 워런티로 무상 처리가 되지만, 이물질이 끼어서 발생한 문제라면 $200 가까운 수리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왕년에 전자 제품 서비스를 해 본 내 판단으로는 그 담당자의 말이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기에 유, 무상 처리는 담당자의 판단에 따를 테니 수리를 해 달라고 했다. 돌아서며 생각하니 아무래도 무상 처리는 어렵겠다 싶었다. 수리가 끝나고 담당자를 만나 보니 위에 적은 두..

미국 생활 2023.09.04

미국인들 침대는 어찌나 큰지

여행 중 호텔에 묵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침대 크기에 놀라고는 미국인들 침대는 어찌나 큰지, 나 같은 체격을 가진 사람이 침대에 올라가려면 사다리가 필요하고, 침대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자동차가 필요하겠더라고 아무도 믿지 않을 허풍을 떨기도 한다. 체육관에서 대하는 미국인들을 보면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탈의실에서 벌거벗은 몸매를 보면 코끼리나 하마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몸매 관리를 열심히 해서 저절로 시선이 (그것도 몰래 그리고 자주) 가는 젊은이도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 비율은 미미하다. 20세 이상 미국 성인 남자의 평균 체중은 90. 6kg, 성인 여자는 77.5kg이라고 하니 한국인의 평균 체중(남 73.3kg, 여 58.3)보다 훨씬 많다. 미국인들이 ..

미국 생활 2023.08.17

진상 고객이 되다.

며칠째 화씨 90도(섭씨 32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던 어느 날 에어컨이 가동을 멈추었다. 에어컨 덕분에 바깥 날씨와 관계없이 서늘한 실내에서 지내다가 찜통 온도를 견디려니 무척 힘들었다. 설치된 지 20여 년 된 기계니 제 수명이 다한 걸로 짐작되었지만,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럴 때 쓰려고 매달 가스 요금에 얹어 내던 서비스 요금이 생각나서 그 서비스 회사에 전화했더니 닷새 후에나 기술자를 보내 주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날짜로 예약을 해 두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가며 전화를 끊고 나서 관련 서류를 찾아보았더니 사그라들던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1. 가스회사와 에어컨(및 히터와 온수 공급기) 서비스 회사는 별개의 회사이지만, 가스회사의 요금 청구서에 얹어서 요금을 징수하..

미국 생활 2023.07.17

난청유감

캐나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며칠 후 체육관에 갔더니 오랜만에 만난 마이크(Michael) 영감이 반겨준다. 나보다 열 살 정도는 많아 보이는데, 나이 차이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여느 미국 영감들처럼 나를 늘 ‘Steve, my friend’라 부른다. 친근하게 대해주니 기분은 좋은데 영감님의 귀가 지독하게 나빠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때로는 괴롭다. 그: “오랜만이야. 무슨 일이 있었어?” 나: “캐나다 여행 갔다 오느라고 열흘 정도 체육관에 못 나왔어요.” 그: “뭐라고? 넘어졌다고?” 그는 보청기를 낀 귀를 아예 내 입에 바짝 갖다 대고 들으려고 애쓴다. 나: “아니요. 여행 다녀왔다고요?” 그: “다친 데는 없다고?” 나: “여행 다녀왔다니까요.” 그: “병원에는 가 봤어?” 나: “아니요, 다친..

미국 생활 2023.07.02

이웃 할머니의 내로남불

내로남불이라는 용어가 위키백과 사전에 표제어 Naeronambul로 등재된 걸 보니 이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듯하다. 이 사전에서는 이 용어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내로남불이라는 한국말은 ‘이중 잣대’를 가리키는 건데,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을 줄인 것으로서 주로 정치적으로 상대편을 비판할 때 사용된다. 이 용어는 나와 상대방을 이중 기준으로 비판히는데 사용된다. 여기서 로맨스란 지극히 정상적이고 개인적인 남녀관계로 생각되고, 불륜이란 가정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은밀한 관계를 갖는 걸 비난하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도덕적 기준을 낮게 잡아 정당화하고,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도덕적 기준을 높게 잡아 엄격하게 비판하는 걸 이른다. 이와 같은..

미국 생활 202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