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문제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받곤 한다. 때로는 직접 댁을 방문해 문제를 해결해 드리기도 한다. 대부분 간단한 문제들이지만, 어르신들은 그러한 작은 문제에도 답답해하며, 내가 손쉽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초보 수준을 갓 벗어난 나를 전문가로까지 추켜세우시니 민망할 때가 많다.
‘컴맹’이라는 단어는 ‘문맹’에서 유래한 조어로,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초기에는 단순히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지칭했지만,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사용은 가능하더라도 컴퓨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에게 새로운 기술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므로, 이를 거부하기보다는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선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부터 조금씩 익히며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익히려 욕심낼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부터 선택적으로 배우다 보면 어느새 컴맹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일단 부딪쳐 보고, 필요할 때 경험자의 도움을 받으며 익혀 나간다면 점차 익숙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컴맹으로 지내려면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온라인 은행 업무나 전자 문서 작성을 할 줄 모르면 기본적인 경제 활동이 어려워지고, 컴퓨터 사용 능력이 부족하면 취업이나 업무 수행에도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컴맹과 문맹 중 어느 쪽이 더 불편할까? 나는 문맹이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거라 생각한다. 컴맹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더라도 크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또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생활을 해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맹은 기본적인 의사소통 자체가 어렵고, 독립적인 생활이 힘들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부정적인 시선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문맹은 컴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클 것이다.
오래전에 본 영화 중에서 문맹을 다룬 두 편이 떠올라 간략히 정리해 본다.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의 줄거리
195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소년 마이클은 연상의 여성 한나와 사랑에 빠진다. 한나는 만날 때마다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며, 독서가 끝나면 성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어느 날 한나는 갑자기 사라지고, 몇 년 후 법학도가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에서 피고로 선 그녀를 목격한다. 한나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 자백을 하고, 결국 불필요하게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오랜 시간이 흘러 형기가 만료되어 석방을 앞둔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스탠리와 아이리스(Stanley & Iris)’
아이리스는 남편을 잃고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그녀는 직장 동료 스탠리를 만나 가까워진다. 스탠리는 문맹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아이리스에게 글을 배우면서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고, 더 나은 직업을 얻으며 사회에 적응해 나간다. 결국 새 직장에서 승진하고 재산을 모은 후, 그는 아이리스에게 청혼한다.
두 영화는 문맹이 단순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심리와 사회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스탠리와 아이리스’*는 교육을 통한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반면, *‘책 읽어주는 남자’*는 문맹이 개인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조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오늘날 선진국의 문맹률은 1% 미만으로 매우 낮다. 특히 한국은 높은 교육열과 배우기 쉬운 한글 덕분에 일부 고연령층을 제외하면 문맹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컴퓨터 자판을 보면 자음이 왼쪽, 모음이 오른쪽에 배치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완벽한 문자를 만들어 준 세종대왕께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2025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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