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러시아인들의 이름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삼척감자 2025. 4. 10. 20:41

이베이에서 중고로 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한 지 꽤 됐는데, 이상하게도 책갈피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세 권으로 된 책 전체 분량이 1,500쪽쯤 되니 만만한 분량은 아닌데, 책갈피가 좀처럼 앞으로 가지 않으니 이걸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제1권 절반쯤 읽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데도 아직도 주요 등장인물 이름이 헷갈리니, 이름 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치는 느낌이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처음부터 구조가 복잡하다. 우리처럼 이름이 두세 글자로 끝나는 게 아니다. 보통 이름 + 부칭 + 성,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부칭’이란, 누구의 아들이나 딸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 이름이 이반이면, 아들은 ‘이바노비치’, 딸은 ‘이바노브나’ 같은 식이다. 일종의 ‘출신증명서’ 같은 이름이다.

게다가 러시아 문학에는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애칭이다. 근데 이 애칭이 우리가 생각하는 별명과는 다르다. 그냥 또 하나의 이름이라고 봐야 한다. 긴 정식 이름보다 애칭을 더 자주 쓰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 애칭이 원래 이름과 전혀 닮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초반엔 누가 누군지 도무지 헷갈린다. 이름은 겹치는 경우가 많으니, 부칭까지 붙여야 구별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읽는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게다가 남자와 여자의 부칭은 또 다르게 생겼다. 같은 가족이라도 아들과 딸의 이름에서 부칭이 다르게 붙으니, 누가 누군지 더 헷갈린다.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작은 등장인물도 엄청 많다. 게다가 작가가 인물들을 부를 때 이름, 성, 부칭, 애칭, 혹은 이걸 섞어 쓰기도 한다. 그러니 이름만 따로 정리해놓지 않으면, 도저히 누가 누군지 따라갈 수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러시아 사람들도 과연 자국 황제들 이름을 다 기억할까? ‘이반, 표트르, 알렉산드르’ 이런 이름이 반복되는데, 부칭까지 없으면 도무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 조선의 임금들 이름은 얼마나 간단한가. ‘태, 정, 태, 세, 문, 단, 세...’ 이 정도만 외워도 줄줄 나온다. 이 아침, 괜히 한글 이름이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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