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1960년대 영어 수업과 40년의 미국 생활

삼척감자 2026. 8. 22. 04:51

오래전에 나온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내 고향 강원도를 무대로 하는 데다가 재미도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미군 조종사 스미스(Smith)는 비행기가 산간 오지인 동막골에 추락한 뒤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갇히게 된다. 그런데 마을 교사인 김 선생이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영어독본'을 펼쳐놓고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미국인을 생전 처음 보는 김 선생은 영어를 실제 상황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교과서에 나온 대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주고받아야 하는 문답으로 생각했다.

 

김 선생은 “How are you?”라고 물으면 상대방이 “Fine, and you?”라고 답하고, 그걸 받아서 “I'm fine.”이라고 말하는 교과서식 대화가 순서대로 이루어져야 정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몸이 묶인 상황이었기에,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듣고지금 내가 어떤지 보면 모르냐?”며 황당해한다.

 

더 웃긴 것은 김 선생이 자신의 영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교과서대로 대답하지 않는 스미스를 이상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후 김 선생은 이 일을 마을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자신이 배운 교과서식 영어를 그대로 가르친다. 이 장면은 '교과서 영어' '실제 상황에서 쓰이는 영어'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유머를 잘 보여준다.

 

1960년대 중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배운 인사말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바로 “How do you do?”. 당시 영어 선생님은 처음 만난 사람끼리 나누는 정중한 인사라고 가르쳐 주셨다. 한 사람이 “How do you do?”라고 말하면 상대방도 똑같이 “How do you do?”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How are you?”라고 물으면 상대방은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해야 하고, 그러면 다시 “I'm fine, thank you.”라고 답하는 것이 올바른 영어라고 배웠다. 영어는 잘 짜인 문답표 같았다. 질문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었고, 그 정답을 정확하게 말하면 영어를 잘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981년 미국에 처음 와서 지금까지 생활하는 동안, 처음 만난 미국인에게 “How do you do?”라고 말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미국 사람들은 그저 “Hi” “Hello”라고 인사했고, 처음 만난 사이라면 “Nice to meet you”라고 했다. 중학교 영어 시간에 배웠던 그 근사하고 정중한 “How do you do?”는 현실의 미국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표현이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How are you?”에 대한 반응이었다. 한국에서는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졌지만, 미국 사람들은 “Good.”이라고 짧게 대답하거나 “I'm good.”이라고 하곤 했다. 어떤 사람은 그저 “Great!” 한마디만 남기고 지나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잘못 배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배운 영어와 미국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 사이의 간극이었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문법과 정형화된 문장으로 배웠지만, 미국에서 만난 영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교과서 속 “How are you?”는 정성스럽게 안부를 묻는 질문이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저 가벼운안녕하세요에 가까운 인사였다. “Fine, thank you”라는 완벽한 문장 대신 “Good” 한마디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의 영어 교육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에는 미국에 가서 영어를 직접 들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교과서와 영어 선생님의 말씀이 접할 수 있는 영어의 전부였으니, 정해진 문장을 외우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당시에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공부법이었을 것이다.

 

미국에 40여 년을 살면서 회사 일로 출장도 많이 다녔고 수많은 거래처 사람들을 만났지만, “How do you do?”를 주고받는 격식 차린 표현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써본 적도 없다. 요즈음 한국의 중학교에서는 어떤 표현을 가르치고 있을까? 적어도 격식에 얽매여 평생 한 번도 쓰지 않을 그런 표현을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본다.

 

(202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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