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퍼 리(Harper Lee)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두어 번 읽었고,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그레고리 펙이 주연)도 구해서 보았다. 소설이 전해주는 깊은 울림에 감명을 받아 주변 분들에게 책을 빌려주며 읽어보기를 권하기도 했으니, 이쯤 되면 나 스스로를 《앵무새 죽이기》의 오랜 애독자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설 제목에 쓰인 '앵무새'의 실제 모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앵무목에 속하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반려조인 앵무새가 아니라 참새목(目)에 속하는 '흉내지빠귀(Mockingbird)'라는 새다. 그러니까 한국어로 번역하며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엉뚱한 새의 이름으로 번역된 것이다. 이 과(科)에는 약 30여 종이 넘는 새들이 속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쓰레셔(Thrasher)'이다.흥미롭게도 이 새의 이름은 내가 살고 있는 집 주소의 길 이름(Thrasher Court)에 그대로 들어있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 동네에서 흔히 보이는 이 새는 아래로 길게 굽은 부리로 땅 위의 낙엽을 털어내고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 특징을 지녔다. 미국 동부 지역에 흔히 서식하며 수천 가지 소리를 흉내 낸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직 이 새의 노랫소리를 직접 들어보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 앵무새(흉내지빠귀)는 "남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오직 아름다운 노래만을 들려주는 순수하고 무고한 존재"를 상징한다.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앵무새들은 사람들의 정원을 망치지 않고 곡식을 먹지도 않으며, 그저 우리를 위해 마음을 다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란다.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되는 거란다."
이 상징은 소설 속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무고한 인물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희생된 흑인 청년 톰 로빈슨과, 편견 속에서도 다정한 호의를 베푼 은둔자 부 래들리가 바로 이 무고한 앵무새였다. 나아가 톰 로빈슨의 무죄를 알면서도 백인 우월주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한 배심원단, 그리고 그 부조리 앞에서 한계를 느낀 테일러 판사와 핀치 변호사의 모습은 집단적 편견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고한 이의 눈물을 완전히 닦아주지 못하는 비극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은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소설에서 재판을 주재하던 테일러 판사가 던진 한마디가 그러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법이다."
("People generally see what they look for, and hear what they listen for.")
이 대목은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에 남겼던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기꺼이 믿는다"라는 통찰과 맞닿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확증 편향과 선입견의 본질을 정곡으로 찌른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고 믿지만, 사실 객관적 진실보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미리 정해둔 답이다. 오늘날 좌우로 갈라져 대립하는 정치적 현실은 이 지적을 더욱 아프게 다가오게 한다. 진실을 향해 마음을 열기보다 속한 진영에 유리한 조각만을 수집하고, 상대의 선의조차 음모로 해석해 버리는 모습은 마음의 눈과 귀가 이미 닫혀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진위보다 진영에 유리한가를 먼저 따지고, 객관적 반박 증거가 제시되어도 상대의 조작으로 치부하며 사회는 점점 갈라지고 있다. 결국 편견이라는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또 다른 앵무새를 희생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저자인 하퍼 리는 2016년 2월, 89세를 일기로 고향 먼로빌에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평생 화려한 명성을 멀리했지만, 그녀가 남긴 작품은 시대와 인종을 넘어 정의와 인간성에 대한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그녀의 영원한 안식처인 먼로빌은 내가 몇 년 동안 살았던 앨러배마주 헌츠빌에서 차로 4시간 남짓 떨어진 곳이다. 이 소설의 울림을 그 당시에 온전히 알았더라면 작가의 고향을 기꺼이 찾아가 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남는다.
(2026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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