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가게 문을 닫는다는 것

삼척감자 2026. 10. 19. 03:50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 온 분이 수십 년 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곧 정리한다고 한다.

 

미국 이민 1세대들이 오랜 세월 일구어 온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온라인 상거래의 확산과 소비 방식의 변화, 인건비와 임대료 상승 등 달라진 경영 환경을 견디기 어려워진 데다, 가게를 지켜 온 주인들도 고령에 접어들었다. 자녀들이 가업을 잇지 않는 경우도 많아 결국 평생 일군 가게를 정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가게 몇 곳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이민 1세대가 미국에서 일구어 온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내 지인도 예외가 아니다. 온라인 거래와 가격 경쟁에 밀려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으로 소일거리 삼아 가게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닫기로 했다고 한다. 막상 폐업을 결심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1998)이 떠올랐다. 영화의 여주인공 캐슬린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작은 서점을 닫으면서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을 떼어 가지고 나온다. 오랫동안 손님들이 드나들 때마다 울렸을 종이다. 텅 빈 가게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던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캐슬린에게 서점은 단순한 생업의 터전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특별한 공간이었다.

 

내 지인에게도 그 가게는 단순한 일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매일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며 가족을 부양하고, 단골들과 안부를 나누고, 크고 작은 일들을 겪어 냈을 테다. 그 세월이 쌓인 곳을 떠난다는 것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랫동안 몸에 밴 일상이 사라지고, 자신의 삶에서 한 부분을 떼어 내는 듯한 허전함도 클 것이다.

 

가게를 닫는다는 것은 열쇠를 넘기고 간판을 내리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곳에서 보낸 젊은 날과 가족의 세월, 사람들과 맺은 인연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폐업을 앞둔 사람의 마음에는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함께 자리하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0여 년 동안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한 적이 있다. 가게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장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한 채 가게를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건물주의 요구로 문을 닫게 되었다. 막상 떠날 때는 애물단지를 치우듯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지나고 보니 그 가게가 내게 해 준 일이 적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밥 굶지 않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두 딸이 모두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되었다.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에는 눈앞의 어려움만 보였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그곳에서 보낸 세월에도 나름의 깊은 의미가 있었다.

 

이제 지인에게도 가게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다만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에게는 쉬는 일조차 새로운 적응일지 모른다. 가게 문을 닫은 뒤에도 한동안은 아침이면 문을 열러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가게는 사라져도 그곳에서 살아온 세월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일군 가게에서 쌓은 경험과 인연은 앞으로도 그의 삶 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그가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기를 바란다.

 

 

(2026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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