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촌놈들의 행진과 바닷바람

삼척감자 2025. 8. 11. 20:23

윗대 조상이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을관향(貫鄕)’이라 한다.
나의 관향은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에는 묵호읍 망상리라 불렸던 곳이다. 집성촌은 아니지만, 김해 김씨 일가가 오래전부터 바닷바람과 함께 뿌리내려 살고 있다.

 

() 돌림의 숙항 , () 돌림의 동항들이 아직도 그곳에 많이 남아 있다. 바다와 사이의 작은 마을, 바닷물 냄새가 그곳은, 세월이 흘러도 기억 속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조용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우리 할아버지 댁은 망상 해수욕장 건너편, 해안도로 너머 나지막한 산자락에 있었다. 마을은 바람에 잔물결이 이는 갈대밭처럼 평화로웠고, 사람들은 대체로 넉넉하진 않아도 궁핍하지 않은 살림을 꾸렸다.

 

구글 어스로 지금의 망상리는 예전보다 산이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 있고, 농지는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다. 옛날에는 보기 힘들었던 크고 번듯한 집들이 곳곳에 있고, 파란 지붕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망상 해수욕장이 이름을 널리 알리면서 관광객이 늘고, 마을 살림도 한층 넉넉해진 듯하다.

 

다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안개 풍경처럼 흐릿하다. 할아버지 댁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지도 속에서 집어낼 수가 없다.

 

망상리에서 묵호 읍내로 가는 길은 마을 초입의 장승 —‘천하 대장군지하 여장군’— 지나 사문재라는 고갯길로 이어졌다. 걸어서 시간 남짓. 고개를 오를 때면 바다 냄새가 소나무 향과 섞여 올라왔고, 바람 속에서 바닷새의 울음소리가 길손을 배웅했다.

 

망상리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읍내의 묵호중학교로 진학했다. 버스나 기차도 있었지만, 운행 횟수는 적었고 요금(4 남짓) 아끼기 위해 대개 걸어 다녔다.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끼리,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무리를 지어 통학했다. 무리의 풍경이 바뀐 , 망상 출신의 상업 과목 선생님이 부임하면서였다.

 

이른 아침, 도시락을 선생님이 앞에 서고, 여덟 남짓한 아이들이 책가방을 끼고 뒤를 따랐다. 마치 경보 선수들이 바닷바람을 헤치고 가듯 씩씩하게, 고를 없이 걸었다. 선생님의 걸음은 파도처럼 빠르고 끊김이 없었으니, 한눈팔 새도 없이 따라가야 했다.

 

읍내 아이들은 교문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다촌놈들 온다!” 놀려댔지만, 무리에 속한 아이들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자랑스러웠다. 선생님과 함께 걷는 길은, 그들에게 작은 깃발을 행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여학생들은 무리에 끼지 않았다. 시골 어른들의 눈초리는 무겁고 날카로웠으니까.
촌놈들의 행진 아침마다 읍내의 작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반백 . 한적하던 마을 앞길로 동해고속도로가 뚫리고, 망상 해수욕장 개발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땅값은 하늘 높은 모르고 치솟아,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억대, 심지어 수십억대의 땅부자가 되었다. 나와 동급생이던 삼촌도 부자가 되어 걱정없이 산다고 한다.

 

망상을 떠난 친척들도 있지만, 여전히 땅을 지키며 사는 이들도 많다. 통장 잔고는 두둑할지 몰라도, 그들의 살림은 예전처럼 검소하다.

 

어느 , 오랫동안 소식 끊긴 중학교 동창들을 인터넷으로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나 닿은 소식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세대는컴맹 대부분이니, 웹사이트에 글을 남겨도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5 후배 명과 연락이 닿았다. 서울 어딘가에서 목회 중이라는 그는, 반가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식통이 되어 주지 못했다.

 

에휴그렇게 세월만 흐르고, 위의 발자국은 바람 속으로 흩어져 갔다.

 

(2010년 경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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