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내 고향 충청도

삼척감자 2025. 10. 3. 21:36

나는 서른 살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충청도 땅을 밟아보았다.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회사에 입사할 때까지 충청도에는 가볼 일이 전혀 없었다. 다니던 회사와 연관된 부서도 대개 서울과 경상도에 있었던 터라, 회사에 입사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충청도 지역은 내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입사 후 맡은 업무 때문에 관공서에 자주 출입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여성과 연애라는 걸 하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아내가 충청도 출신이어서, 결혼하기 얼마 전에 처음으로 충청도라는 곳을 방문했다. 처가 식구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지나친 충청도 풍경은 그저 밋밋하게 느껴졌다. 아무렴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내 고향 강원도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혼한 다음 해, 뜻밖에도 충청남도 대전으로 전근 발령이 났다. 입사 후 몇 년 동안 특허 문서 번역이나 하며 경쟁사와의 특허 분쟁에 매달려 서류 작업만 주로 해오던 '책상 물림'이 충청·전라 지역의 고객 서비스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생소한 업무인 데다, 졸지에 6개 서비스 센터에서 근무하는 70여 명의 직원을 관리하게 되니 솔직히 자신감이 없었다.

 

부임하고 며칠 후, 서비스 센터의 책임자 여섯 명을 소집해 상견례를 겸한 회의를 열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나보다 10여 년 연상이었고, 정년 퇴직을 앞둔 최고참 직원은 나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았다. 업무도 생소한데,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들을 대하려니 지레 주눅이 들었다. 그들의 눈빛 역시 경험 없는 상사를 얕보는 것 같았다. 하기야 그들 입장에서도 '애송이 상관'과 함께 지낼 생각을 하며 불안했을 것이다. 나를 어차피 두어 해 근무하며 경력이나 쌓은 후 다른 부서로 떠날 '나그네' 취급을 하려 들었다.

 

현장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열심히 지방의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여 직원들을 만나고, 대리점을 방문하여 서비스 관련 문제점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출장을 다녔다. 일 년에 출장 일수가 100일이 넘다 보니, 큰딸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출장 중이었다. 두 딸이 언제 기기 시작했는지, 걷기 시작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야말로 일에 미쳐서 지낸 때였다. 서비스 업무에 전혀 경험이 없는 책임자가 관리하는 데도, 경험 많은 직원들 덕분에 업무는 별다른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조직의 힘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업무 출장이라는 이름의 충청·전라 지역 탐사가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내 사무실이 있던 충청도 지역을 더 자주 방문했다. 강원도보다 더 오지처럼 보였던 충청북도 어느 산골 마을, 비포장도로를 달려 대전에서 세 시간 걸려 칠갑산을 넘어 도착한 산골 마을 청양, 조용한 섬 마을 안면도 등이 모두 그때 가본 곳이다. 그렇게 아내의 고향이기도 하고, 두 딸이 태어난 충청도를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이상하게도 정이 들지 않았다. 내 고향 강원도와 풍광이 너무 달라서 그랬을까?

 

충청도에서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뜻밖에도 그리고 느닷없이 미국의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왜 내 인생에는뜻밖에도 그리고 느닷없이라는 표현을 쓸 일이 자주 생겼는지 모르겠다. 하기사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게 아니던가?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뉴저지에 왔을 때, 큰딸은 세 살, 작은딸은 한 살이었다. 우리 부부는 각각 30대 초반과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다. 뉴저지에서 앨라배마로, 그리고 다시 뉴저지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뉴저지에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낸 셈이다.

 

나는 궁금했다. 우리 두 딸은 어디를 고향으로 생각할까? 부모가 태어난 곳은 생소할 테니, 태어난 곳인 대전일까? 아니면 가장 많은 세월을 보낸 뉴저지일까? 어느 날 작은딸의 페이스북에 'Hometown' Nutley, New Jersey라고 적어둔 것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가수 조영남이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와 살다 정든 곳 / 두메나 산골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 나를 키워준 고향 충청도라고 노래했듯이, 우리 두 딸이 뉴저지를 고향으로 여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충청도에서 초급 관리자로서 길지 않은 세월을 보냈지만, 일에 미쳐서 개인 생활을 돌보지 않았던 충청도가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이 자주 생각난다. 내 기억 속의 그들은 아직도 한창때의 모습인데, 나이로 짐작하건대 대부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지금도 '대전발 0 50', '백마강 달밤에', '천둥산 박달재' 같은 노래를 들으면 함께 고생한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 저녁엔 아무래도 조영남의 '내 고향 충청도'를 들으며 술 한 잔 해야 하겠다.

 

(2025 10 3)

 

이 글을 보고 1978~1981년에 금성사 중부 서비스과에서 함께 근무한 분들의 소식을 듣게 되는 행운을 기대해 봅니다. 인생에는 워낙 뜻밖의 일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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