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이른 새벽의 꿈

삼척감자 2025. 10. 20. 21:15

이른 새벽, 악몽을 꾸었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다시는 잠을 이룰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중학교 운동장 , 넓은 쓰레기 집하장 옆에 앉아 있었다.썩어가는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르며 머리를 아프게 했다.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쓰레기 더미에서 갓난아이 시신이 발견됐대.”
말과 끝나고 장면이 바뀌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남동생이 눈물 자국에 석탄가루가 뒤섞인 얼굴로 울고 있었다. 얼굴이 어쩐지 너무 생생해서, 꿈속에서도 숨이 막혔다. 어머니가 삼척에 다녀오신다고 하자 묵호읍내의 차부까지 쫓아갔다가 야단맞고 집으로 되돌아 왔던 날의 모습이었다.

 

1961, 아버지의 전근으로 태어나서 자란 삼척읍내의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갑자기 전학하게된 묵호읍내의 중학교는 환경이 열악했다. 맨땅에 세운 임시 가건물 교사는 여름엔 찜통 같고, 겨울엔 매서운 바람이 틈새로 스며들었다. 운동장 밭은 학교 부지를 넓히려고 작업을 하는 ,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내 썩은 냄새가 났다.
특히 여름철에는, 냄새가 코끝을 넘어 가슴속까지 파고들 만큼 고약했다.

 

어느 체육 시간, 잠깐의 휴식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매립장 근처로 가서 잡초 사이에 뿌리를 캐고 있었다.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먹으려고 그랬다. 빈곤한 시절,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간식거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급히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게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마뿌리를 캐던 아이가 갓난아이의 시신을 발견해 선생님께 알렸고, 선생님은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6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다. 시절의 경찰 수사력이야 말해 무엇하랴. 결국 사건의 전말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 조용히 잊히고 말았을 것이다.

 

무렵 묵호읍은 삼척 탄광지대의 석탄을 실어 나르는 항구였다. 덮개 없이 쌓인 석탄이 바람에 날리면 마을이 시커먼 먼지로 덮였다. 빨래는 금세 까맣게 변했고, 울보였던 동생의 얼굴에도 석탄가루가 얼룩졌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아버지는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으셨다. 당시 한전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 석탄 운송 덮개를 씌워야 한다 진정서를 써서 제출하셨다.
미농지 여러 장을 겹치고, 사이사이에 먹지를 끼워 복사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시절, ‘환경이라는 말은 사치에 가까운 단어였다. 가난이 일상의 전부였던 시대였으니, 아버지의 진정서가 받아들여졌다는 소식은 끝내 듣지 못했다.

 

꿈속에서 동생의 얼굴은 너무나 또렷했다. 눈물자국과 석탄가루의 얼룩, 그리고 매립장에서 풍기던 냄새까지도. 나는 마치 여자아이의 시신을 직접 사람인 몸서리를 쳤다.

 

60 동안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일이 이 새벽, 갑자기 꿈속에서 되살아나
마음을 이토록 뒤흔드는 걸까.

 

부디, 이런 꿈은 다시 꾸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 시절의 모든 아픔이, 이제는 편히 잠들었기를 바란다.

 

(2025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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