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삼척에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오십천(五十川)이 흐른다. 어린 날의 기억 속 그 강은 산란기를 맞아 연어들이 거슬러 올라올 때면 생동감이 넘쳤다. 그 시절 우리는 연어 배에서 꺼낸 알을 소금에 절여 별미로 즐겼지만, 정작 연어 고기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없다. 훗날 연어의 생태를 알고서야 비로소 그 수수께끼가 풀렸다. 악전고투 끝에 상류에 닿은 연어는 온몸이 찢기고 쇠약해진, 그야말로 만신창이의 몸이었다. 생의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부어 대를 이은 그 살에 맛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나이 들어서 머나먼 미국 땅에 살며, 나는 코스트코에서 파는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를 즐겨 찾는다. 선명한 주홍빛 색감에 마음이 먼저 끌리기도 하거니와, 기생충이나 중금속 걱정 없이 안심하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지에서 직송되어 갓 손질된 연어를 마주할 때면, 나는 그것을 단순한 식재료로만 대하지 않는다. 내게 연어를 손질하는 일은 요리라기보다, 지나온 세월과 고향을 반추하는 경건한 '작은 의식'에 가깝다.
도마 위에 오른 연어의 살빛은 그 자체로 내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 고운 빛깔에 현혹되어 곧장 프라이팬이나 접시로 옮겨서는 안 된다. 연어가 온전한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인내의 단계'가 있다.
우선 키친타월로 겉면의 물기를 정성스레 닦아낸 뒤, 굵은 소금을 집어 위아래로 고루 뿌리고 문지른다. 이 소금은 간을 맞추기 위함이 아니다. 살 속에 숨어있는 불필요한 수분과 비린 잡내를 조용히 끌어내기 위한 낮은 부름이다. 소금을 입은 연어를 냉장고에 넣고 한 시간가량 홀로 머물게 한다. 그 정적의 시간 동안 연어의 살결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표면에는 투명한 물방울이 맺힌다. 비로소 연어가 스스로를 정돈하며 제 맛을 응축하는 과정이다.
기다림이 끝나면 흐르는 찬물에 연어를 잠깐 씻어낸다. 소금의 흔적만 지우듯 머뭇거리지 않고 재빠르게. 물에 오래 머물면 연어 본연의 맛까지 흘러가 버리기에, 이 과정에는 절제의 미덕이 필요하다. 다시 키친타월로 톡톡 눌러가며 보송하게 물기를 닦아내면, 비린내는 사라지고 탄력 있는 살점이 비로소 손끝에 전해진다. 이제 연어는 구이가 되든, 덮밥이 되든, 혹은 초장에 몸을 맡기든 결코 흐트러지지 않을 준비를 마친 셈이다.
이렇게 갈무리된 연어는 이미 반쯤 완성된 예술품이다.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누어 플라스틱 랩으로 감싸 냉동실에 갈무리해 두면, 필요할 때마다 한 덩이씩 꺼내어 느긋하게 해동해 즐길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아내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연어의 산란지에서 태어나 자란 이로서 마땅히 치러야 할 예우라고 믿기 때문이다.
손질을 마친 뒤에는 나를 위한 작은 보상도 잊지 않는다. 손질 직후의 싱싱한 조각들을 접시에 가지런히 올린다.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단숨에 털어 넣고 "카아-" 하는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연어 한 점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천천히 씹으며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을 음미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낮은 독백이 흘러나온다.
"이게 바로 천국의 맛이 아니고 무엇이랴."
(2026년 2월 3일)
'시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8년 전 오늘 (0) | 2025.11.19 |
|---|---|
| 이른 새벽의 꿈 (0) | 2025.10.20 |
| 내 고향 충청도 (1) | 2025.10.03 |
| 촌놈들의 행진과 바닷바람 (5) | 2025.08.11 |
| 꿈에서 만난 친구, 그리움으로 남다 (4) | 2025.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