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

영명축일 축하 인사

삼척감자 2022. 9. 6. 02:55

가톨릭과 일부 개신교에서는 세례받을 때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선택한다. 이렇게 선택된 성인을 주보 성인(主保聖人)이라고 한다. 이는 세례명으로 선택한 성인의 삶을 본받아 살겠다는 의지임과 동시에 이름을 바꿈에 따라 그 사람도 변화한다는 성서의 내용에 바탕을 둔 것이다.

 

교회에서는 각 성인에 대하여 특별히 그분을 기념하는 날을 정하는데 대개는 그 성인의 기일을 축일로 삼는다. 신자는 자신의 주보성인의 축일을 영명축일로 기념하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신앙심이 깊은 분들은 영명 축일을 생일보다 더 의미 있는 날로 여기고 그날이 되면 다른 신자들의 축하를 받는다.

 

나의 주보성인은 스테파노 성인이므로 내 영명축일은 그분의 축일인 12 26일이다. 주님 탄생 대축일인 12 25일의 바로 다음 날이라서 나도 깜빡 잊고 지낼 때가 많았고, 신자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는 해마다 영명축일이 되면 축하해 주는 분들이 적지 않다. 나는 그분들 모두가 하느님을 대신해서 나에게 스테파노 성인의 삶을 깨우쳐 주는 천사라고 여긴다.

 

천사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 존재들의 직명(職名)이다. 종교적인 의미와는 달리 세속적으로는 지극히 온유하고 지극히 사랑이 많은 사람을 천사 같다고 한다. 물론 이런 분들은 지극히 선하고, 순수하고 남에게 베푸는 행위가 몸에 배어 있는 분들이다. 내 주위에는 이런 분들이 적지 않다. A , B ………..Z 씨 등 알파벳 스물여섯 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천사를 알고 있으니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들 중에서도 오랜 세월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두 분, A 씨와 B 씨를 나는 각각 천사 중 천사(Angel of Angels)라 여기는데 아쉽게도 두 분 모두 1년여 전에 한 분은 서부 끝으로, 한 분은 남부로 떠났다. 한 분은 성질대로 후딱후딱 이삿짐 싸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서 서운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는데 다른 한 분과는 떠나기 전날 식사를 함께하며 40여 년 함께 한 지난 세월을 반추하였다. 그런데 별일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작별 이사를 나누는데 오랫동안 말라붙었던 눈물샘이 터지는 것이었다. 눈물 닦으랴, 더듬거리며 인사하랴그저 허둥대기만 했을 뿐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주님 탄생 대축일에 필라델피아의 큰딸 집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다음 날 일찍 깨어서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더니 멀리 서부의 천사 A에게서 온 영명축일 축하 인사가 와 있었다. 오전 2 43분에 보냈으니 이 친구는 잠도 안 자고 이걸 보냈나? 그리고 얼마 후 남부의 천사 B에게서 온 축하 인사가 도착했다. 역시 1위와 2위는 그들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적지 않은 분들에게서 축하 인사를 받으니 부끄러웠다.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보다는 친구 만나는 재미로 성당에 다니는 엉터리 신자 생활이 부끄러웠고, 일 년 내내 스테파노 성인을 잊고 지낸 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영명 축일을 맞아 이런 부끄러움을 일깨워 준 여러 천사가 고마웠다.

 

(201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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