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

하느님의 침묵

삼척감자 2022. 9. 7. 05:21

‘붉은 수수밭’이라는 중국 영화는 장이머우 감독의 데뷔작이자 배우 궁리가 처음 출연한 영화로서 두 사람은 이 영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나에게 중국 영화에 관심을 끌게 한 영화인데 항일 게릴라로 활동하던 인물이 일본군에게 잡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별을 받는 장면은 정말 끔찍했다. 가죽을 벗겨내는 장면은 건너뛰었는데도 상상만으로도 매우 두려웠다.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마카베오기 2 7장에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붉은 수수밭이라는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 때에 유대인인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매질을 당하며, 유대 율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맏아들이 유대 조상들의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하자 임금은 화가 나서 맏아들의 혀를 잘라 내고 머리 가죽을 벗기고 손발을 자르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를 곁으로 옮겨 냄비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하였다. 냄비에서 연기가 멀리 퍼져나갈 , 나머지 형제들은 고결하게 죽자고 어머니와 함께 서로 격려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에게 참으로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첫째가 이런 식으로 죽자 둘째부터 일곱째까지 모두 돼지고기 먹기를 거부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라고 말하며 죽어 갔다.

                                                                                                                                      

특별히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그는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하였고, 아들들의 뒤를 이어 죽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문을 견디고, 목숨을 내어놓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와 상관없는 이가 그러는 걸 지켜보는 것도 무서울 텐데, 자신의 일곱 아들이 차례차례 죽어가는 걸 지켜보며 목숨을 애걸하지 말고 참고 견디라고 격려하다가 자신도 기꺼이 순교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보통 어머니 같으면 돼지고기를 먹고 배교하라고 권하거나, 첫째 아들이 고문당하는 걸 보고 의식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럴 때 하느님은 침묵만 지키실 게 아니라 기적을 드러내시면 좋으련만.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에서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는 자신이 배교하지 않으면 신자들이 계속  고문당하게 되어 고뇌하게 된다. 결국 로드리고 신부는 후미에(일본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예수님이 그려진 목판이나 금속판. 밟지 않고 지나가면 배교를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함)를 밟게 되는데, 동판에 발을 가져다 대자 통증과 함께 그림으로 그려진 예수님이 말하는 걸 듣게 된다.

"밟아라. 아픔을 알기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나는 그 발의 아픔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로드리고 신부는 하느님이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며, 자신을 배신한 밀고자마저 용서하게 된다.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 죽음에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 한편으로는 그 공포로 인해 하느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신앙인이라면 한 번쯤 고통 속에서 침묵하는 하느님으로 인해 상처 입는 것들을 역사적 박해 상황과 결합해 극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고통받고 있을 때 하느님은 대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을 때 하느님의 침묵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그런 순간에 나처럼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할 테니 나는 부디 그런 선택을 할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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