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조앤 할머니

삼척감자 2025. 4. 17. 20:46

우리 이웃에 살던 조앤 할머니는 올해로 여든이셨다. 얼굴만 봐도 까다롭게 생긴 데다, 성격도 급하고 성마른 편이었다. 우리가 이사 왔을 때부터 사소한 일로 텃세를 부리려 들었다. 쓰레기 처리나 화단에 심는 문제 같은 사소한 일에 잔소리를 하거나, 규정을 어겼다며 관리인에게 일러바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바싹 마른 몸에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로 봐선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고, 굳이 맞대응하기보다는 그냥 웃어넘기며 지내곤 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이웃과 거의 교류가 없었고, 식료품을 사러 나오는 정도 외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어쩌다 마주쳐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주차된 차만 그대로 있고, 할머니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작년 , 집에서 나오는 남자를 보았다. 혹시 조앤 할머니의 아들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그는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자신은 가끔 들러 정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도 그는 담담했고, 슬퍼하는 기색은 거의 없었다.

 

며칠 전엔 조앤 할머니처럼 자그마한 여자가 비닐봉지를 들고 집에서 나오는 보았다. 혹시 자매냐고 묻자, 가까운 친척인 줄리(Julie)라고 했다. 집안 정리가 끝나면 가족들과 상의해 집을 매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반년이 되어 가도록 집이 여전히 비어 있는 보면, 비록 작은 집이지만 상속 문제 등으로 처리가 늦어지는 듯했다. 산책하다 보니 줄리가 조앤의 문을 모두 열고 남은 물건이 없는지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사람은 떠났고, 남은 가족들은 드나들며 만한 물건을 챙기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생전에 얼굴도 보이지 않던 이들이 이제야 나타나는 보니, 마음 한켠이 씁쓸했다.

 

이웃에 살던 스캇도 세상을 떠난 벌써 1년이 되어 간다. 그가 쓰던 차는 그때 주차한 자리에서 아직도 그대로 방치돼 있다. 우리 근처에 사는 아흔여덟 할머니는 년이 훨씬 넘었는데, 간혹 들르는 간병인 말로는 아직 기력이 그럭저럭 버틸 만해 당분간 세상을 떠날 같지는 않다고 한다.

 

이웃의 노인들을 보다 보면, 나이가 들수록 찾아오는 이도 거의 없고, 떠난 뒤의 뒷정리조차 더디게 진행되는 듯하다. 남긴 재산이 변변치 않아 유족들도 유산 처리에 크게 관심이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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