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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평준화 법칙

삼척감자 2025. 8. 23. 00:16

코스트코에서 예전에 다니던 성당 교우 P 씨의 막내 동생 부부를 만났다. 간단히 대화를 나누던 , 상대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손바닥을 귀에 갖다 대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에 놀랐다. 환갑은 지났겠지만 나보다 열두어 살은 아래일 텐데, 한창 나이에 청력이 그렇게 떨어지다니. 요즘은 나이가 들면서 귀가 어두워져 소통이 어려운 이들을 자주 접한다. 비싼 보청기를 착용해도 시끄럽기만 하고 도움이 된다며 푸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을 때마다 평생 난청으로 고생해 내게는 남의 같지 않다. 나이 들어 청력이 약해진 동지들을 만날 때마다늙으면 모든 평준화된다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보다 아래인 옆집 남자 잭은 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신장 투석을 받으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요즘은 휠체어와 워커를 번갈아 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사실 왼쪽 다리에 의족을 끼고 클러치를 짚으며 느릿느릿 걷는 나도 그보다 크게 나은 형편은 아니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콘도미니엄이다 보니 걷기 힘들어하는 이들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며, “나이 들면 걷는 것도 평준화되는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젊었을 나는꽃미남으로 통했다. 당시에는 그런 표현이 없어 사람들은 나를여자보다 예쁜 남자라고 불렀다. ‘잘생겼다 아니라예쁘다 말이 못마땅했지만, 외모로 주목받는 것이 전혀 싫지만은 않았다. 예순을 넘어서도 가끔미남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일흔을 지난 뒤로는 번뿐이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나를 보며미남이라 부를 때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머리카락이 거의 빠져 대머리가 지경이고, 생기 잃은 얼굴에 지팡이까지 짚고 다니니 미남과는 거리가 멀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느낀다. 평범한 남자나 한때의 미남이나, 나이가 들수록 외모는 결국 평준화된다는 것을. 왕년의미남으로서는 조금 서글픈 일이다.

 

사회적 지위나 학력도 나이가 들면 의미가 퇴색한다. 그래서인지 성당에서 만나는 이들의 출신학교나 직장 경력은 알지 못한다. 다만 말과 행동에서 풍기는 태도로 대강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장성(將星) 출신의 친구와 연락이 닿으면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나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군에서 중책을 맡아 국가를 지킨 그들의 삶에 예를 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늙으면 모든 평준화된다 우겨도, 재력만큼은 세상 떠날 때까지 평준화되지 않는다. 재산이 넉넉하면 사는 편하고, 남에게 베풀 있어 존경도 받으며, 체력이 따라준다면 삶을 즐길 있다. 돈은 늙어서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하지만 나는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돈을 그리워하며 사니, 딱한 노릇이다.

 

늙으면 모든 평준화된다 말은,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옅어지고 결국 비슷한 지점에 도달한다는 뜻일 것이다. 젊어서는 비교와 경쟁이 삶의 중심이지만, 나이가 들면 평온과 수용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죽음이라는 피할 없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결국 평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2025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