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개봉된 영화 <타이타닉>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로즈의 약혼자 칼 헉슬리일 것이다. 영화는 잭과 로즈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그렸지만, 사실 배경이 분명치 않은 남자와 경솔하고 무책임한 여성의 불륜에 지나지 않는다. 왜 예술 작품은 대개 불륜의 가해자를 낭만적인 주인공으로, 피해자를 추악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일까?
칼은 사랑을 배려와 책임으로 증명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는 신분 차이가 있는 로즈를 당당히 자신 곁에 두고자 했으며,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면서도 그녀의 배경을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즈는 그의 헌신을 하찮은 종잇조각처럼 여기며, 배에서 우연히 만난 떠돌이 화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영화는 그를 천박한 졸부이자 로즈를 옭아매는 족쇄로 그렸지만, 그의 심장은 배신감에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그는 단지 사랑을 믿었기에 더 깊이 상처받은 남자였을 뿐이다.
사랑은 정말 즉흥적인 불장난에 불과할까? 한순간의 열정 앞에서 수년간의 신뢰와 약속은 그렇게도 하찮게 무너져야 했을까? 사람들은 칼을 '루저'라 부르겠지만, 그는 적어도 한 여인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남자였다. 그의 마음속 깊은 상처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예술 작품에서 불륜은 갈등을 유발하는 극적 장치이자 인간의 금지된 욕망을 자극하는 소재로 자주 사용된다. 현실에서 불륜은 상처를 남기지만, 창작물은 그 위험한 욕망을 극대화함으로써 관객이 그 열정에 매료되도록 만든다.
인류 역사에서 불륜은 늘 그림자처럼 존재해왔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이면을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만약 불륜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게 될까?
개인의 차원에서 불안과 의심이 줄어들 것이다. 사랑은 온전히 신뢰 위에 세워지고, 가정은 배신이라는 균열 없이 유지될 것이다. 마음속에 감춰진 상처가 줄어들고, 연인과 부부는 보다 투명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가정 붕괴가 줄어들고, 아이들은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공동체의 토대가 더 단단해지고,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 사회 전반을 지탱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이 뒤따른다. 불륜이 사라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의 본성이 변화한 것일까, 아니면 사회가 욕망을 제어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것일까? 만약 인간에게서 '다른 가능성에 끌리는 마음' 자체가 사라진 것이라면, 우리는 한층 더 도덕적으로 성숙한 존재가 되는 걸까? 아니면 인간다움의 한 조각을 잃어버리는 걸까?
예술과 문학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작품이 불륜이라는 소재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탐구해왔기 때문이다. 그 긴장감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욕망과 갈등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균열 속에서 자신을 비추고, 그 틈새에서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려왔기 때문이다.
결국 불륜이 없는 세상은 더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약속하지만, 동시에 인간 욕망의 또 다른 그림자가 새롭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또 그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륜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지, 그것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 묻고 또 대답해야 할 다음 이야기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로맨스를 다룬 작품에 흥미가 떨어지고 결말이 뻔히 보이는 불륜 소재의 작품에 식상함을 느낀다. 이렇게 현실성이 없는 글을 쓰며 도덕군자인 척하는 것도 어쩌면 내가 '꼰대'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025년 9월 24일)
'이것저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소리를 만나다 (1) | 2025.11.10 |
|---|---|
| 적응이 어렵더라는 한국의 차량 문제 (1) | 2025.09.29 |
| 노년의 평준화 법칙 (2) | 2025.08.23 |
| 별과 이어진 작은 존재 (7) | 2025.07.31 |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7) | 2025.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