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무렵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으니, 먹을 것도 약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지독한 중이염을 앓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귀에서 고름이 나와도 그저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치가 화근이 되었는지. 오른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고, 왼쪽 귀마저 온전치 못했다. 그때부터 내 세상은 언제나 반쪽짜리 소리 속에 머물렀다.
어릴 적 내 별명은 '귀머거리'였고, 학교 받아쓰기 성적은 거의 영점이었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불편을 느꼈지만, 사람은 참 묘한 존재다. 들리지 않는 현실에 익숙해지고, 그 불편 속에서도 나름의 방법으로 꿋꿋이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쪽에는 늘 "다시 제대로 듣고 싶다"는 갈증이 남아 있었다.
30여 년 전, 큰맘 먹고 보청기를 샀다. 당시로선 꽤 큰돈을 들여 희망을 구매한 것이었다. 귀에 꽂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삐걱거리는 잡음과 귀속에서 울리는 불쾌한 소리뿐이었다. 말소리는 늘 웅웅거렸고, 보청기를 쓰면 머리가 아팠다. 결국 석 달쯤 후, 그 비싼 물건은 속절없이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몇 년 전 다시 한번 시도했지만, 세상은 아직 '난청인에게 딱 맞는 기술'을 준비해 두지 못한 듯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회사 후배가 올린 글 하나를 보았다.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그가 '이어폰 겸용 보청기'를 써보니 '쓸 만하다'고 했다. 호기심이 일어 인터넷을 뒤져본 이어폰 겸용 보청기의 장단점은 다음과 같았다.
기대되는 장점:
기존 보청기($2,000~$7,000)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200 내외).
스마트폰과 쉽게 연동되어 주변 소리 증폭 가능.
일반 이어폰처럼 보여 멋쟁이 노인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
음악, 통화, 잡음 제거 등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사용 가능.
아쉬운 단점:
특정 난청 유형에는 효과가 제한적임.
사용 시간이 4~6시간으로 짧음.
스마트폰과 연동되어야만 기능을 발휘하므로 단곡 사용이 불가능.
즉, 편리하고 저렴한 보조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전문 보청기의 대체품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사용해 보기 전에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단점보다는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부담 없는 가격이어서 "보청기로 쓸 수 없으면 이어폰으로라도 쓰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문을 넣었다.
주문 당일 도착한 상자를 열고, 작은 기기를 귀에 꽂았다. 설치 과정이 조금 복잡했지만, 그 정도 수고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충전을 마친 이어폰 겸용 보청기를 양쪽 귀에 꽂고 스마트폰의 연동 기능을 켠 순간, 낯설고도 따스한 세상의 숨결이 다시 들려왔다.
오래 잊고 지냈던 소리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부엌에서 아내가 요리 준비하는 소리가 마치 천둥 소리처럼 들렸고,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이 다 되었다고 알리는 멜로디 소리가 아름다웠다. "세상은 이렇게나 시끄러웠구나!" 싶었다. 예전 보청기와 달리 소리가 울리지 않았고, 잡음도 거의 없었다. 그동안 기술이 이토록 발전했던 것이다.
오늘, 성당에서 새 기계를 사용해 보니 미사 해설자의 목소리, 신부님의 강론, 그리고 성가대의 음악까지 명료하게 잘 들려 미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두 딸과 화상 통화를 하면서도 딸들의 목소리가 잘 들려 대화에 집중하기가 쉬웠다. 세상과 다시 별문제 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당분간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해 보아야 말할 수 있게 되겠지만, 일단 '밑천은 건질 수 있는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든다.
(2025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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